2024-04-23 17:05 (화)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4)'블랙먼데이' 2편비교㊤대재앙 전조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4)'블랙먼데이' 2편비교㊤대재앙 전조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19.11.03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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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19일부터 일주일 내내 다우존스 주가 '무기력'
'일시적' , '대폭락' 견해 맞서… 재무장관 나섰지만 '투매장'
웨스팅하우스 하룻새 반토막 나는 등 우량 주식도추풍낙엽

"마침내 자격증을 따냈고 떼돈을 긁어모을 준비가 끝났어. 앞으로 전 세계를 주무를 지배자로서 첫 날을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그놈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가 터졌던 거야. 빌어먹을! 오후 4시까지 지수가 508포인트나 폭락한 거 있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치였어. 진짜 믿기지 않았어. 그게 정식 브로커로 첫 발을 내딛었던 날이었는데, 한 달도 채 안 돼 1899년 출범한 로스차일드가 문을 닫았고 날 집어 삼켰던 월스트리트는 다시 날 뱉어놨지."

월스트리트에서 떼돈을 벌어 반드시 큰 부자가 되고야 말겠다던 20대 중반의 열혈 청년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주인공인 그는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이후 '블랙 먼데이'로 불리던 이날, 아수라장이 된 자기 회사 LF 로스차일드(LF Rothschild & Co.) 객장에서 고객의 전화 문의에 답을 하다 이 같은 넋두리를 관객에게 풀어 놓는다.

어렵게 주식 중개인 자격증을 따고 정식으로 출근한 첫날이었으니 더 기가 막혔을 것이다. 자기가 다녔던 100년 된 회사도 곧 문을 닫았으니 결국 실업자 신세가 될 운명이었다. 참고로 그가 다녔던 회사의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유럽의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Rothchild Family)'과는 관련 없는 중소 규모의 증권회사. '블랙 먼데이'의 여파로 많은 중소 증권회사들은 'LF 로스차일드'처럼 증거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더 울프~>는 할리우드에서는 보기 드믄 작가주의의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Martin Scorsese)가 만들어 2013년 개봉한 영화다. 영화는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불량 주식중개인' 조던 벨포트의 회고록 『월가의 늑대』를 각색해 만들었다. 26세 되던 해 그는 월스트리트라는 전장(戰場)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던 그는 이미 월스트리트애서도 불량하기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월스트리트 증권인으로 깨끗한 사람이야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는 상상 이상이었다. 주가조작이나 사기, 자금세탁 등 경제 관련 악행 뿐 아니라 여자와 마약, 섹스 등에 빠져 난장판 삶을 살았다. 이 '불량한' 주식 중개인 역을 맡은 배우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그는 마약과 섹스에 찌든 돈 많은 인물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다시 한 번 출중한 연기력을 뽐냈다. 비록 아카데미상은 놓쳤지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꿰차 영화인들에게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87년 10월 19일 증권회사 로스차일드(LF Rothschild & Co.)의 객장.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한 장면으로 중앙의 인물이 주인공 조던 벨포트.
1987년 10월 19일 증권회사 로스차일드(LF Rothschild & Co.)의 객장.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한 장면으로 중앙의 인물이 주인공 조던 벨포트.

하지만 '영화로 경제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많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1980년대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나 1987년 '블랙 먼데이 위기'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아쉽다. 이 날과 관련해서 영화는, 주인공 벨포트의 넋두리만 있을 뿐 그날에 대한 어떤 해석도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사실상 그가 증권맨으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한 1990년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달라졌다 해도 당시 월스트리트 분위기나 경제정책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1987년 위기 직후 벨포트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섰고 이후 비상장 페니주식 거래를 통해 자신이 원하던 큰돈을 번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이 역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진짜 주제는 마약과 섹스, 돈세탁 등 대중적 관심사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작가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스콜세이지 감독은 영화를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로 마약과 섹스를 드러내는 한편의 코미디 영화로 만들었다.

우리가 오늘 알고자 하는 것은 1987년 10월 미국 증권가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위협했던 거대한 위기에 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980년대 초ㆍ중반의 미국 금융시장 및 경제 전반을 얘기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아쉽게도 <더 울프~>에는 그게 없다. 그래서 또 하나 찾은 게 미국 할리우드의 또 한 명의 거장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1987년 작 <월 스트리트>다. 이 영화 개봉 한 해 전인 1986년 <플래툰>과 <살바도르>를 동시에 발표함으로써 아직 '시나리오작가'였던 그는 비로소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특히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꿰차게 해준 <플래툰>은 영화계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월스트리트>는 스톤 감독의 '3연타석 홈런'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개봉돼 화제를 모으는 금융 관련 영화의 고전이자 거의 '최초'라 할 만 하다. 개봉 당시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들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주인공 고든 게코 역을 맡았던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Kirk Douglas)의 빼어난 연기 덕에 '게코 어록'이란 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자본주의란 곧 금융을 의미한다", "나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소유할 뿐이다", "내가 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잃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등이 인구에 회자됐던 '어록'의 주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초ㆍ중반의 월 스트리트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결정적으로 아쉬운 게 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위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당연했다. 비록 블랙 먼데이 이후 개봉되기는 했지만 촬영은 위기 발생 몇 달 전에 이미 다 끝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일 수 있었다. 위기의 공포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개봉됨으로써 더 많은 대중을 상영관으로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울프~>와 <월스트리트>를 오가며 1987년 위기를 얘기해 보도록 하자. 이들을 통해 위기 자체는 물론 그 전후의 분위기 파악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 앞서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재앙에는 전조가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를 덮친 대재앙도 그랬다.

1987년 7월부터 1988년 1월까지의 다우존스지수 변동. ‘블랙 먼데이’로 불리는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하루 동안 2246.74포인트였던 다우존스지수는 1738.74포인트로 무려 508포인트, 22.6%나 빠졌다.
1987년 7월부터 1988년 1월까지의 다우존스지수 변동. '블랙 먼데이'로 불리는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하루 동안 2246.74포인트였던 다우존스지수는 1738.74포인트로 무려 508포인트, 22.6%나 빠졌다.

사건 1주일 전부터 증시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1주일 전인 12일 월요일 주가(다우존스지수)가 10.77포인트 하락한 뒤 일주일 내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화요일은 그럭저럭 넘겼다지만 이틀 뒤인 14일 수요일 주가는 95.46포인트가 떨어졌고 15일 목요일에는 다시 57.61포인트가 떨어졌다. 혹시나 했던 투자자들은 16일 금요일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날 하루 주가가 무려 108.36 포인트나 떨어졌던 것이다.

금요일 폐장 이후 미국의 화두는 단연 주식시장이었다. 엄청난 하락장을 겪은 증시에 대해 전문가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투자자들에게 전해졌다. 누구는 일시적이라 했고 누구는 대폭락이 올 것이라 말했다. 이 불안감은 정부까지 움직였다. 이날 저녁 ABC TV 저녁 뉴스에 베이커 장관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을 안도시키려 애썼다. 그는 "오늘의 주가 폭락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지만 당황해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또 "주가는 과도하게 오른 상태였으며 내려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중개인들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는 말도 전했다. 장관의 말에 적지 않은 국민이 안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날.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금요일 폐장 후 베이커 장관까지 나서서 국민과 투자자를 안심시키려 했으나 이날의 상황을 보면 그 결과는 '대실패'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시 30분 장이 열리자마자 시장에는 거대한 태풍이 몰려왔고 세상은 아수라장이 됐던 것이다. 개장과 동시에 주가가(다우존스지수)가 67포인트 하락했고 뒤 이어 팔자 주문이 쇄도했다. 그럼에도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오직 '팔자' 주문만 난무했다.

개장 1시간이 지나자 주가는 더 떨어졌다. 하락폭이 무려 104포인트나 됐지만 그럼에도 매도 주문이 그치지 않았다. 팔자 주문을 위한 투자자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전화는 불통이었고 간신히 통화가 됐다 해도 주문이 밀려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많은 경우 전광판에 표시된 주가는 20~30분 전에 체결된 것이었다. 시장은 마치 미친 소 같았다. 그 누구의 통제도 먹히지 않았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완전 마비상태였고 주가는 제대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가를 모른다..... 이 사실만큼 투자자를 공포로 몰아가는 것도 없을 것이다. 던지고 또 던지고.... 오전 내내 투자자들의 투매는 끝이 없었다. 오후가 되자 공포는 더욱 커졌다. 오후 1시 무렵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거래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한다는 루머까지 돌았던 것이다. 투자자들은 더욱 큰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것 자체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자기 주식이 자칫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투자자들은 더 미친 듯 주식을 시장에 내놓았고 주가 역시 더 미친 듯 빠졌다. '투매의 광기'는 오후 4시 장이 마감될 때까지 계속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2246.74포인트였던 주가(다우존스지수)는 1738.74포인트로 508포인트, 22.6%나 빠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지수 하락은 더 컸다. 80.75포인트 하락에 하락률은 28.6%에 달했다. 1600개 상장 종목 중 상승은 52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모두가 하락했다. 우량주도 말이 아니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날 하루 45% 하락해 반토막이 났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나, GE, 코카콜라 등도 30% 이상 빠졌다. 이날 하루 무려 5000억 달러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1929년 '암흑의 목요일'을 능가하는 뉴욕증시 개장 이후 200년 동안 최고치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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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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