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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여도지죄'(餘桃之罪)를 아는가
[김성희의 역사갈피] '여도지죄'(餘桃之罪)를 아는가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6.01.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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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위나라 영공(靈公), 용모가 수려한 신하 '미자하'에 무조건 사랑 베풀어
그러자 자신에대한 신임만 믿고 '제후'에게 '먹다만 복숭아' 주는 등 '불손한' 행동
제후의 수레 몰래 타도 죄 받지 않다가 제후의 사랑이 식어지면서 옛 잘못도 단죄
'여도지죄(餘桃之罪)'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는 행태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정치판에서 비롯된 신조어가 쏟아진다. 워낙 희한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탓이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약어 '내로남불'이다.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데, 이는 행위 주체 또는 진영에 따라 선악, 정오의 기준이 달라지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한데 이와 비슷한 뜻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는 행태를 가리키는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여도지죄(餘桃之罪)'다. 『재밌어서 밤새 읽는 고사성어 이야기』(박은철 글·그림, 더숲)에 따르면 중국 고전 『한비자』 중 「세난편(說難篇)」에 나온단다.

2,700년 전쯤 중국 춘추 시대 위나라에는 영공(靈公)이란 제후가 있었다. 음란하고 방탕하여 도저히 군주감이 아니었던 그가 아끼던 신하 중 미자하(彌子瑕)가 이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외모가 뛰어났던 덕분에 영공의 큰 총애를 받았다. 얼마나 대단했는지 하루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미자하가 왕명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에 다녀왔는데도 무사했을 정도였다.

당시 위나라 법에 따르면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을 받아야 했지만 영공은 "미자하가 얼마나 효자였으면 월형을 무릅쓰고 어머니에게 달려갔겠는가"하고 오히려 칭찬하고 넘어갔다.

총애가 지나치면 기어오르기 마련이다. 하루는 영공과 함께 복숭아 밭을 산책하던 미자하가 잘 익은 복숭아를 발견했다. 미자하는 얼른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고는 아주 달다며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건넸다. 신하들이 미자하를 불경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지만 영공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었으면 자기가 먹던 것도 잊어버리고 복숭아를 내개 주었겠는가?"하며 웃어 넘겼다.

문제는 그 뒤다. 미자하의 외모가 시들자 영공의 총애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미자하를 두고 영공은 예전 일까지 들춰냈다. "미자하는 정말 고약한 놈이다. 내 수레를 훔쳐 타고, 자기 입에 넣었던 복숭아를 내게 먹으라고 줬다"며 가중 처벌했다.

이것이 '여도지죄', 즉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법가의 사상가로 유명한 한비자는 이를 두고 "미자하의 행동은 바뀐 게 없지만 영공의 총애가 변했다"고 짚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의 경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다. 권력자의 신뢰나 총애를 믿고 막말을 하고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이들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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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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