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동업은 청소년 시기의 관심사와 우정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빌게이츠가 12살, 그리고 폴 앨런이 14살 때 같은 사립학교(레이크사이드)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컴퓨터에 푹 빠진 상태였고 여러 말이 필요 없었다. 두 살 차이지만 동지이자 친구가 됐다.
좋은 컴퓨터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만져보고 실행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친구들이 파티나 스포츠 놀이에 빠졌을 때 워싱턴주립대학의 연구실에 있는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떼를 쓰며 밤늦게까지 머물렀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연구원’이었다.
컴퓨터의 소통 언어를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짜는데 눈을 떴다. 70년대 초반에 그들은 ‘혁명’을 준비했다. 얼마안가 그들의 손안에서 컴퓨터가 움직이고 손쉽게 컴퓨터를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짜여지는 세상이 열릴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폴 엘런은 "컴퓨터의 칩 성능이 크게 향상돼 새로운 산업이 탄생 할 것"이라며 빌게이츠에 ’예언자‘(prophet)처럼 말했다.
우연일까. 75년 삼성의 이건희 부회장은 앨런의 지목한 반도체 칩 사업을 준비했고 당시 재미 과학자가 귀국해 설립한 한국반도체를 사재로 사들인다. 칩의 데이터 처리용량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커질 거란 예상을 한 폴 앤런과 그 반도체로 세계 전자시장을 주름잡을 꿈에 부풀었던 이건희의 통찰력은 막상막하가 아닌가.
여하간 폴 앨런은 어느날 빌게이츠가 다니던 하버드 대학 교정을 거닐다가 전자 잡지인 포퓰러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에 실린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를 보여준 미니 컴퓨터를 보고 흥분했다.
그는 바로 빌게이츠에 달려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없이도 이 일(컴퓨터 진화)이 일어나고 있어“(This is happening without us).
둘은 다니던 대학을 바로 중퇴하고 ’소프트웨어 제국‘ 건설에 나섰다. 75년 MS는 그렇게 탄생한다. 폴 엔런이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으로 고생하다가 83년 이탈하면서 동업 관계는 끝났다. 하지만 둘은 이미 많은 일을 해냈고 그 누구도 그들의 아성을 넘지 못할 철옹성을 구축했다.
앨런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빌게이츠의 발 빠른 사업전개 능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이후 지분문제를 놓고 둘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농구경기도 같이 관람하는 등 관계가 퍽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 천재 폴 앨런이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좋아 하던 컴퓨터 사업에 대한 열정을 건강 때문에 일부러 식혀야 했던 그는 그 때 ”인생은 불행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Life was too short to spend it unhappily)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MS 주식 상장으로 벌어들인 20조원이 넘는 돈을 운영하면서 여러 곳에 많은 돈을 기부를 했고 그의 재산 대부분도 곧 사회에 기부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빌게이츠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그는 더 오래 살 자격이 있고 그렇게 그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고 추모했다. 또 월스트리트지에 추도사를 별도로 기고했고 그 기고문에 “앨런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그를 몹시 그리워 할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