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거리가 길어져 항상 쫓기는 생활 속 신속한 식사 원하는 것을 간파
사업권 헐값 처분 후 후회않아…"위궤양 시달리며 '소득세 씨름' 했을 것"
딕과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가 1940년 캘리포니아주의 샌버나디노에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는 모든 것이 미미했다.
뉴햄프셔 출신의 30대 형제는 창업자금 1만 달러가 없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다. 식당 운영 경험이라곤 산타아니타 경마장 근처에서 핫도그 매점을 해본 것뿐이었다.
샌버나디노 자체가 10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모여 사는 소도시였다. 하지만 이들은 시장을 읽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내 연간 4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큰 성공을 이뤘다.
맥도널드 형제는 고객층 중 비교적 저렴하고 빠른 식사를 원하는 젊은 맞벌이 부부에 주목했다. 당시 미국인들의 삶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더 많이 이동하고,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항상 쫓기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식당에서도 옛날 같은 개인 서비스보다는 신속한 식사를 원했다.
형제는 고객들이 음식을 받기까지 평균 약 20분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시대 트렌드에 맞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여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1948년 전 과정의 표준화·효율화 작업에 매진했는데 우선 메뉴에서 손이 많이 가는 바비큐, 샌드위치를 없애고 햄버거 중심으로 줄였다. 이렇게 해서 25개의 메뉴가 9개로 간소화됐다.
여기에 손실되기 쉬운 접시와 은제 식기류를 종이 봉투와 종이컵으로 바꿔 식기 세척기를 추방했다. 딕은 프리랜서 작가로 위장해 캔디 회사들을 탐방한 끝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정확한 양의 혼합물을 만들어내는 소형 기계를 찾아내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 데 이용했다.
이런 여러 혁신을 거쳐 '맥버거'를 개발한 형제는 드라이브인 앞에 '스피디'라는 이름의 요리사를 그린 광고판을 세우고 "맥도날드의 유명한 햄버거, 봉지에 담아 가세요. 가격 15센트"란 카피를 적어 넣었다. 표준화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신속한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는 패스트푸드 산업의 혁명의 시작이었다.
놀랍게도 이들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항상 손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주차장에 직원들이 차를 세워두도록 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크셰이크와 감자튀김을 메뉴에 추가한 후, 1950년 들어 가족 단위 식사를 즐기는 노동계급 손님들이 늘면서 맥도날드 형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1년이 되자 연 매출이 27만 달러를 돌파했는데 이는 기계화 이전에 비해 약 40%나 증가한 것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는 형제가 연간 10만 달러의 수익금을 나눠 갖기에 이르렀다.
이는 현대 사회의 원형(原型)을 탐색한, 아주 흥미로운 책 『1950년대, 현대 미국의 탄생』(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페이퍼로드)의 내용 중 일부다. 한데 형제의 성공담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인생관이다. 자기네 사업권을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에 처분한 것을 두고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딕 맥도날드는 전혀 아니라며 이렇게 답했다. "나는 어딘가 고층 빌딩에서 위궤양에 시달리며 세무사들에 둘러싸여 소득세를 얼마나 납부할지 씨름하고 있었을 겁니다"라고. 자기 그릇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보여주는 일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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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