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난 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없어 물건 살 엄두도 못해"덧붙여
골프치면서 티 하나 주우면 싱글벙글 …검소도 하지만 맑은 정신 소유
정 회장이 83년 KOC(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쿠웨이트에서 열린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의에 참석한 때였다. 정 회장 일행은 런던을 거쳐 쿠웨이트에 갔다.
비행기 안에서 낡고 색이 바랜 초록색 털조끼에 헌 구두를 신은 정 회장의 모습을 본 대한체육회 직원이 "회장님, 런던에 오셨으니 오신 김에 구두하고 조끼 새로 장만하시지요"라고 권유했다.
"이봐. 이 조끼는 따뜻해. 그리고 이 구두는 언제 신어도 편해." 정 회장은 단호하게 직원의 권유를 일축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난 말이야.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어. 그러니 물건 살 엄두도 내지 못해."
앞으로 이런 얘기는 아예 꺼내지 말라는 말이었다.
정 회장이 수행 비서 없이 혼자 다녔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과천 정부 청사 현관에서 자신이 타고 온 차를 찾고 있는 정 회장을 봤다는 공무원이 여럿 있다. 웬만한 기업 사장만 해도, 아니 부처 국장만 돼도 비서가 대기하고 있다가 승용차를 대령하는 광경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로서는 현대그룹 회장이 현관에서 혼자 차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진기한 장면일 수 밖에 없었다.
정 회장은 골프를 좋아했다. 주위에서 "어떤 운동이 제일 좋으시냐"라고 물어보면 "걷는 거 하고 골프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옷이나 장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고가의 골프 웨어는 거들떠보지 않았고, 골프채도 10년 넘게 쓴, 중고 채였다.
페어웨이를 휘적휘적 걸어가다가 떨어진 골프 티라도 하나 주우면 마치 횡재한 것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티 하나 주웠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대기업 회장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사실 정주영 회장은 검소하기도 하지만 맑은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규칙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자신은 물론 동반자들도 절대로 공을 터치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 회장과 같은 조에 포함되는 사람은 "오늘 죽었다"라고 복창해야 했다.
공이 숲에 들어가면 캐디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들어가서 찾았다고 한다. 회장이 직접 공을 찾는데 어느 누가 캐디에게 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회장과 동반 라운딩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공까지 찾으러 다녀야 하니 끝나고 나면 몸이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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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