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18:25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명나라 천도와 임진왜란
[김성희의 역사갈피] 명나라 천도와 임진왜란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12.01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락제때 북경으로 옮긴 후 일본이 침략하자 '발등의 불'로 여겨 파병
당시 명나라 형부시랑은 "왜적이 우리의 요동을 엿볼 것"이라고 상소
수도를 북쪽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한반도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 낳아
영락제가 1421년 북경으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뜬금없는 이야기라 할지 모르겠다. 명나라 영락제의 치세와 임진왜란은 무려 170여 년이란 시간적 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한데 『조선과 명나라의 사행 외교사』(조영헌 외 지음, 푸른역사)의 글 한 편을 읽고 나면 나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왜 조선에 원병을 보냈을까? 조선이 모범 조공국이어서? 아니다. 실제 임진왜란 발발 후 10여 년이 지난 1609년 역시 모범 조공국이었던 류큐 왕국(현재의 오키나와)이 일본 사쓰마번의 침공을 받았지만 명은 원병을 보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책에 실린 「북경 천도를 통해 재편된 조명 관계와 '순망치한'」이란 논문에서 이에 관한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명이 조선에 원병을 보낸 것은 수도 북경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을 느꼈던 탓이라는 것이다.

"조선이…우리의 왼쪽 겨드랑이와 가깝습니다…왜적이 조선을 공격하여 점거하고…진격할 경우 통창(통주의 창고)을 점거하여 우리의 향도를 끊을 것입니다. 물러난다면 전라도와 경상도에 주둔하고 평양을 지키면서 우리의 요동을 엿볼 것입니다. 그러면 1년도 안 되어 수도가 곤란에 처할 것이니…"

임진왜란 때 형부시랑 등을 역임했던 여곤이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만력제에게 올린 글이다. 실제 왜적이 북경을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강남에서 북경으로 곡물을 보내는 보급로만 위협해도 북경은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당시 북경 인구는 85만~120만 명으로, 총 길이 1,8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운하를 이용한 조운(漕運)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1570년 대홍수로 대운하 일부 구간이 막히면서 곡물 운송에 차질이 생기자 157년 동안 이용하지 않던 해운을 동원하는 등 온 나라가 들썩였을 정도로 물류구조가 취약했다.

당시 일본군 병력이나 조선을 경유하는 긴 병참로를 감안하면 일본이 직접 북경성을 공략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졌다. 그러니 일본이 조운을 단절하고, 북경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물류 집산지인 통창을 점령한다면 이는 명나라의 목구멍에 칼을 들이대는 격이었다.

당초 명나라의 수도는 남경이었는데 3대 황제 영락제가 1421년 북경으로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그 결과 명과 조선은 그야말로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관계가 되었다. 그러니 '동쪽의 울타리'를 자처하던 조선이 일본군의 침공을 받아 두 달 만에 북녘의 평양성이 함락당하고, 임금 선조는 의주까지 쫓겨가면서 수도 북경에 대한 위협이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결국 임진왜란은 명나라 입장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기에 서둘러 원병을 보낸 것이었다.

역사를 읽다 보면 의도치 않은 일이 뜻밖의 결과는 낳곤 하는 경우를 접한다. 영락제의 북경 천도도 이런 예에 속한다 하겠다. 영락제가 수도를 북쪽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일찌감치 일본에 먹혔으리란 글 제목은 거칠긴 해도 크게 무리한 상상은 아니지 싶다.

---------------------------------------------------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br>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