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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3)'떠오르는 태양'㊤'플라자합의' 幕後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3)'떠오르는 태양'㊤'플라자합의' 幕後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19.10.15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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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관세 전쟁'은 34년전 美日 '플라자 합의'의 복사판 될까
스크린 곳곳에 일본 견제 나선 미국의' 두려움과 열등감 ' 부각
'日 잃어버린 30년' 을 지켜본 중국의 ' 항전' 선택의 결말 주목

2018년 3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포격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은 이후 갈등이 심화되면서 '무역전쟁'에 이어 '환율전쟁'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자 세계의 이목은 35년 가까이 지난 세계경제사의 일대 사건인 1985년 플라자합의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주문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35년 그 사건에 대한 재분석에 여념이 없을 법 하다. 미국은 왜 그때 일본에 그런 요구를 했고 일본은 왜 그것을 받아들였을까, 과연 중국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받아들이면 중국도 일본처럼 향후 30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피터 카우프만 감독의 1993년 작 <떠오르는 태양>은 1980년대와 90년대 초 미국 내에서 일본을 보는 시각과 일본을 향한 미국의 미묘한 심정을 알 수 있는, 진짜 몇 편 안 되는 알짜 영화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 존경심, 열등감, 질투심 등 복잡한 감정이 곳곳에 감춰져 있다. 막대한 돈을 앞세운 일본의 거대 자본과 권력, 그리고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혐일(嫌日) 발언에서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열등감과 질투심을 엿볼 수 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 재무 장관 회의. 이 회의에서 각국은 달러 강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환율조정에 합의했다. 왼쪽부터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재무장관.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 재무 장관 회의. 이 회의에서 각국은 달러 강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환율조정에 합의했다. 왼쪽부터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재무장관.

카우프만 감독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인정받는 드믄 경우다. 1965년 개봉된 데뷔작 <골드스타인>은 흑백 필름으로 만들어진 코미디물로,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 신예비평가상을 수상했다.

1978년 작 <우주의 침입자>는 공포ㆍ스릴러물이며, 1979년에는 이탈리아계 갱들을 소재로 한 <배회자>로 '컬트영화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3년 개봉해 그에게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미국의 초기 우주 탐사 영화 <필사의 도전>은 러닝 타임 3시간이 넘는 대하드라마이며, 밀란 쿤데라의 동명 원작 소설로 잘 알려진 <프라하의 봄>(1988)은 역사 멜로 장르로 그에게 전미비평가협회로부터 작품상과 감독상을 선사했다.

다음 작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1990)으로 잘 알려진 <헨리와 준>은 작가 헨리 밀러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것으로, 그에게 에로영화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보여줬다.


영화 <떠오르는 태양>은 일본의 한 대기업이 미국의 유명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미국 정계와 일본 기업 간 막후 음모와 암투를 그렸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업영화'나 '경제영화'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더 나간다. '음모'의 수단에 폭력, 돈, 마약, 갱, 섹스, 그것도 변태적 섹스 등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 차 있다.

장르로는 '미스터리 스릴러' 쯤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우프만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에 자신의 능력 모두를 담아낸 듯 보인다. <우주의 침입자>에서 보여준 공포ㆍ스릴러, <배회자>에서 보여준 갱과 폭력,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에서 보여준 성적 자극을 하나로 모은 것 같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내게 넓은 땅을 주세요./날 가두지 마세요./내가 사랑하는 넓고 열린 나라를 통해 그것에 가게 해 주세요./저녁에 산들바람을 맞으며자유롭게 살고 싶어요./미루나무의 속삭임을 들어 보세요./날 영원히 보내 주세요./날 가두지 마세요./날 영영 보내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난 내 말을 타고 서부로 갈래요./날 자유롭게 내버려 두세요.】

'떠오르는 태양'에서 에디 사카무라 역을 맡은 캐리 히로유키 타카와(Cary Hiroyuki Tagawa).
'떠오르는 태양'에서 에디 사카무라 역을 맡은 캐리 히로유키 타카와(Cary Hiroyuki Tagawa).

영화 첫 장면부터가 범상치 않다. 1934년 뮤지컬 영화 '날 가두지 마세요(Don't fence me in)'의 타이틀곡으로, 1940~6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에 여러 히트곡을 내놨던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Bing Crosby)의 리바이벌 곡으로 잘 알려진 '날 가두지 마세요(Don't fence me in)'가 흘러나온다. 서부 개척 시대 '서부로 가서 내 땅을 갖겠다'는 카우보이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를, LA에서, 그것도 일본식 가라오케에서, 영어가 서툰 일본인 에디 사카무라(캐리 히로유키 타카와 분)가 부른다. 갱단 조직원 같은 부하들의 화음을 배경으로. 그들은 이미 '서부 땅을 차지한 카우보이'였다.

그뿐 아니다. 늘씬한 금발의 아름다운 미녀 셰릴(타티아나 파티즈 분)이 연인이다. 재미없다며 가라오케를 빠져 나온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빨간 스포츠카. 에디는 화난 그녀를 야단치며 차를 몬다. 돈 많은 에디, 복 받은 에디. 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삶을 즐기는 '일본인 에디'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미국을 점령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일본은 미국을 사들였다. 땅, 건물, 기업, 명화(名畵), 호텔, 그리고 미녀까지. 부러움과 함께 질투, 시기, 미움,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미국을 사들였을까?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리고 그 결말은 어떻게 끝이 난 것일까? 지금은 그저 '지나간 역사'일 뿐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일 간 패권경쟁에서 '일본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폴 케네디(Paul Kennedy)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도 이때의 분위기 전환에 일조했다. 일본의 야심과 미국의 두려움이 극에 달한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어떻게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플라자합의'라는 역사적 대 사건이 그 열쇄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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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2013)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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