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 14:15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록펠러센터에 '레닌' 나올뻔?
[김성희의 역사갈피] 록펠러센터에 '레닌' 나올뻔?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11.1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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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정책에 따라 예술분야 지원도 하는데 '벽화그리는' 사업에 '공산주의' 경험한 화가 뽑혀
자본주의 심장 록펠러센터 벽에 노동자 이끄는 레닌 얼굴 넣은 '메이데이 행진' 그렸다 없애
미국 록펠러센터에 레닌의 얼굴이 들어설 뻔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존 D. 록펠러는 한때 미국 주유소의 95%를 지배하던 스탠다드 오일을 세운 사업가로, 앤드류 카네기와 더불어 미국 부호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의 아들 록펠러 2세는 1928년 뉴욕에 록펠러센터를 세웠는데, '도시 속의 도시'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며 가히 '자본주의 전당'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세계 건축사상의 명물이다.

한데 화가들의 스캔들을 다룬 『서양미술 사건수첩』(세기 신이치 지음, 아트북스)에 따르면 이곳에 러시아 공산혁명을 이끈 레닌의 얼굴이 들어설 뻔했단다. 1930년대 미국에선 예술과 관련한 거대한 공공사업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공황을 벗어나려는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5년에 발족한 WPA(사업진행국)에 의한 미국을 기록하는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일종의 예술지원사업이었는데 이 중 최대 규모의의 작업이 록펠러센터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 대작을 맡은 이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멕시코 전통을 소재로 한 벽화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멕시코 출신 디에고 리베라. 1910년대 유럽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그는 사회주의에 심취해 멕시코 공산당에도 가입했고, 1927년엔 혁명 1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던 '진보적' 예술가.

현지에서 목격한 스탈린식 공산주의에 염증을 느꼈던 그는 1930년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헨리 포드의 주문으로 디트로이트 미술학교에 노동자 중심의 벽화를 그리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그가 1933년 록펠러센터 안의 벽화를 그리게 됐으니 '사고'는 예정되었던 셈이다.

20세기 사회와 정치, 산업과 과학을 모두 담으려 한 리베라는 벽화에 노동자들이 벌이는 거대한 메이데이 행진을 넣었는데, 문제는 노동자들을 이끌며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레닌의 얼굴이 들어가 있어 논란이 됐다. 이를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끝에 레닌의 초상을 제거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리베라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이 벽화는 파괴되었다.

그러고도 리베라는 그해에 록펠러 재단에서 받은 기금으로 뉴욕 독립 노동자학교의 벽화를 그리는 등 신념을 지켜갔다.

1933년 고국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좌파 지식인·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의 인간적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멕시코 공산당 서기장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스탈린과 맞섰던 트로츠키가 1937년 멕시코로 망명해 오면서 스탈린주의 비판에 가세함으로써 당에서 축출되었다. 게다가 '자화상'으로 유명한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와 트로츠키 사이에 염문이 돌면서 리베라 부부는 한 차례 이혼 후 재결합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돈과 예술, 신념과 사람의 묘한 이중주를 보여주는 리베라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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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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