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3 16:40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치는 왜 '인민법정' 만들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치는 왜 '인민법정' 만들었나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10.13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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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일 의회서 '절대의석 확보'한 히틀러 불쾌하게 하는 판결한 판사 해임
'민주주의'의 죽음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타산지석 삼을만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당이 저지른 만행은 인류사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당이 저지른 만행은 인류사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한데 그들이 당시 독일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기에 나치 독일의 책임 소재를 두고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물론, 정치학자· 법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나오지만 1933년 2월 27일에 일어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나치 독일의 집권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사건 당시 기성 보수세력의 오판과 뻘짓으로 히틀러가 총리가 되긴 했지만 독일국가사회주의 정당(나치)은 연립정권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내각에서 불과 세 자리만 나치 몫일 정도였다. 때문에 기존 의회를 해산하고 나치 단독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3월 5일로 총선거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 참에 현장에서 붙잡힌 방화범 마리뉘스 뤼버가 24세의 네덜란드 출신 석공으로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은 나치에게 더없는 호재로 작용했다. 나치는 의사당 방화를 공산당의 소행으로 몰아감으로써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공산당 공포를 자극해 43.9%를 득표해 단숨에 제1당으로 떠올랐다.

뤼버가 가지고 간 성냥과 불쏘시개로는 의사당 전체를 태울 수 없으며, 혼자 그런 대형 화재를 일으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게다가 뤼버는 직장에서 부상을 당해 80% 가까이 시력을 잃었고, 화재 당시 의사당 내부 구조에도 무지했으며 여러 달에 걸친 심문에도 단독 소행임을 주장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한 채 '공산당 음모'설을 부각시킨 덕분이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후 있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나치 돌격대원이었던 한스 게오르크 게베어란 방화 전문가가 국회의사당 화재의 주범이었다는 증언도 나왔기에 나치 자작극이란 설도 유력하게 나왔다.

어쨌거나 선거 결과 전체 의석 647석 중 288석을 차지한 나치는 3월 23일 의회에서,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수권법'을 갖은 압력을 동원해 통과시켰다. 이후 수권법에 따라 신규 창당을 금지하는 등 절대권력을 행사한 끝에 1933년 11월 총선에서 나치는 92%의 득표율을 얻어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삼권분립에 바탕한 독일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한 데에는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히틀러의 집권 과정을 촘촘하게 추적한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벤저민 카터 헷 지음, 눌와)에서도 이 사건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워낙 상세해서 몇 줄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방화 사건 관련 재판이다. 라이프치히 재판에서 뤼버 말고도 세 명의 불가리아인과 한 명의 독일인 공산주의 운동가가 국가반역죄로 기소되었는데 독일 대법원 판사들은 뤼버 외 네 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없거나 경찰이 조작한 증거밖에 없었기에 당연한 판결이었지만 히틀러는 이에 크게 분개했다.

그 결과 특별히 정치범죄를 다루는 '인민법정(Volksgerichtshof)'이 만들어져 제3제국 시대 내 법의 합리성, 예측 가능성, 일관성을 망가뜨리는 판결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총통을 불쾌하게 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직접 비난을 받거나 해임되기까지 했다.

민주주의의 죽음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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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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