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17:25 (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7)과잉생산 위기…'왓 위민 원트'⑫ '시장=전장' 깊어진 기업 갈등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7)과잉생산 위기…'왓 위민 원트'⑫ '시장=전장' 깊어진 기업 갈등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5.10.05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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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본질은 기업 간 이해 충돌에 있고 소비자를 충족 시키는 데 있지 않아"
"과잉 생산 체제 아래 노사(勞使)라는 종적 갈등 만큼 기업 간 횡적 갈등도 중요"

과잉생산 체제다. 상품은 많고 고객은 부족하다. 이제 시장은 전장이다. 경쟁기업보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포지셔닝 전략'으로 기업의 숨통을 튼 트라우트와 리스가 이 같은 상황에서 또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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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마음속에 새로운 '상품의 방'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 방의 주인이 되라!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가 말하는 '포지셔닝'의 핵심 전략은 이렇게 풀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있는 '상품방'에는 상품이 많다. 1등이 있고 2등이 있고 3등이 있다. 새로 그 방에 들어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품들과 싸워봐야 이기기 힘들다. 그러느니 차라리 새 방을 만들고 그 방에서 선두 주자가 되는 편이 낫다. 새 음료를 내겠다고? 그럼 '청량음료방'은 꽉 찼으니 '한방음료방' 등을 새로 만들어 그 방 주인이 되면 어떨까? 대충 이런 얘기다.

■ '블루오션 마케팅'은 포지셔닝 전략의 확장?

2005년 발간해 공전의 히트를 거둔 마케팅 북 《블루오션전략》.  ※자료=교보문고
2005년 발간해 공전의 히트를 거둔 마케팅 북 《블루오션전략》. ※자료=교보문고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정도 얘기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수 있다. '블루 오션'이다.

이는 2005년 출간된 《블루오션전략》(교보문고)의 두 저자인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대학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교수가 제안한 마케팅 개념과 전략이다.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을 '레드 오션'으로, 경쟁이 없거나 적은 신시장 '블루 오션'에 비유한 두 저자는 기업에게 "블루 오션을 찾으라"고 권한다. 우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책에서 트라우트와 리스가 말하는 '포지셔닝' 개념의 확장을 읽을 수 있다.

트라우트와 리스의 '포지셔닝' 개념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새롭게 펼쳐진 기업의 과잉생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들을 통해 기업은 왜 좋은 물건을 싸게 내놔도 안 팔리는지, 광고효과가 왜 예전만 못한지, 어떻게 해야 상품을 팔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잉생산 시대에 기업의 생존 전략에 대한 트라우트와 리스의 기여는 '포지셔닝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과잉생산 시대에 기업이 해야 할 또 하나의 마케팅전략을 제시한다. '마케팅 전쟁 전략(Marketing Warfare Strategy)'이 그것이다.

필자는 '과잉생산'이 '과잉소비'와 '과잉부채'와 연계해 운영된다고 봤다. 하지만 '과잉생산' 현상은 그 밖에도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다양한 '과잉'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과잉경쟁'도 그중 하나다. '생산'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상품'의 문제이며 따라서 '기업'의 문제이다. 그러니 과잉생산 환경에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과잉' 상황이 심하면 심할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만든 상품이 큰 문제 없이 팔린다면 기업은 '경쟁'에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을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싸게 파는 것에 신경을 쓰면 된다. 하지만 '과잉생산' 상황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품이 넘쳐나고 고객은 부족하다. 기업 간 경쟁이 심해지니 경쟁기업의 활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경쟁기업이 어떤 신제품을 만들 것인지, 고객 확보 전략은 무엇인지, 자금은 충당할 수 있는지 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트라우트와 리스는 이 같은 상황을 '전쟁'에 빗댄다. 이미 상품은 '과잉생산'을 시작했고, 이는 멈출 수 없으며, 과잉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이로써 기업 간 경쟁이 심해졌고 시간이 가면서 더 심해질 게 뻔했다. 결국 기업들 사이의 경쟁은 전쟁 상태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업은 생사를 가를 살벌한 전쟁터로 내몰렸고 이겨야 했다. 트라우트와 리스는 이 같은 기업의 고민도 해결해 준다. '승리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 "시장은 전장" … 노사갈등 보다 기업갈등?

984년 발간된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의 책 《마케팅전쟁》. ※자료=비즈니스북스
984년 발간된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의 책 《마케팅전쟁》. ※자료=비즈니스북스

물론 '전쟁으로 비화(飛化)되는 기업 간 경쟁'이라는 개념을 트라우트와 리스가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들어 필립 코틀러 등 다양한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 같은 개념으로 당시 기업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고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 하지만 트라우트와 리스는 달랐다. 기업의 생존 전략을 누구보다 쉽고 체계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발 빠른 진행이었다.

1984년 출간된 책 《마케팅전쟁(Marketing Warfare)》에서 그들은 전장에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출발부터 남다르다. 그들은 '시장=전장'임을 설파하며 마케팅이라는 '무기'를 강조한다. "프러시아 출신 장성 칼 폰 클라우체비츠가 1832년 쓴 《전쟁론(On War)》이 마케팅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라고까지 말한다. "수많은 무기가 개발되고 극적으로 변했어도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 현대 기업이 처한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시장=전장'인 상황은 과거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사의 성공보다 경쟁사의 실패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며 상황의 현실을 강조한다. 살벌한 얘기다. 당연히 마케팅의 성격도 바뀐다. "오늘날 마케팅의 본질은 기업 간 이해 충돌과 관련 있는 것이지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트라우트와 리스는 '시장'과 '전장'을 비유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시장'은 '전장'인 것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코카와 펩시가 치고받는 것은 '콜라 전쟁'이요, 애플과 IBM은 '컴퓨터 전쟁'을 주도한다. 독일과 미국의 맥주 기업들은 '맥주 전쟁'을 펼친다. 이 '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방법론도 살벌하다. 경쟁사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라, 예기치 못한 지점을 공략하라, '긴 활'로 승부하라 등의 말로 기업의 전투 의지를 자극한다.

그뿐 아니다. 이들은 '단기 전술'뿐 아니라 '중장기 전략'도 제시한다. 업계 선두 주자가 취해야 할 '방어적 마케팅'과 후발 주자가 취해야 할 '공격적 마케팅' 또는 '측면공격 마케팅'의 방식을 알려준다. 나아가 소규모 부대원이 적의 배후나 측면을 기습하거나 교란하는 '게릴라전' 역시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한다. 시종일관 "시장은 전장이고 기업 간 경쟁은 전쟁"이라는 시각을 잃지 않는다.

사회과학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신선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진다. 첫째, 과잉생산 체제 아래서의 자본주의 체제는 노사(勞使)라는 종적 갈등만큼 또는 그 이상의 기업 간 갈등, 즉 횡적 갈등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 기업 간 갈등이 어떻게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부채의 체제를 만들어가는지 그 단초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좀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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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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