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17:35 (월)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6) '한복과 상복' 이게 뭡니까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6) '한복과 상복' 이게 뭡니까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5.09.08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다하다 '옷'으로 갈라선 정기국회…국민들은 어리둥절
美 상원은 통기성 좋은 '지지미 입는' 법안 만장일치 통과
더위 속 전통 살리고, 유머와 화합을 보여 준다는 점 눈길

9월 1일, 정기국회 첫 날 국회 본회의장이 의원들의 옷, 한복(韓服)과 상복(喪服)으로 갈라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형형색색의 한복을,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은 상복 차림으로 개회식에 참석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야 의원들에게 '전 세계에 뿌리내리는 K-컬처를 확산시켜 나가자'며 정기국회 개회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 보랏빛 두루마기 차림으로 의장석에 섰다. 검은 갓과 도포로 눈길을 끄는 남성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여성 의원들은 다양한 색상의 치마저고리, 당의, 조끼 등으로 우아하고 품위 있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정치가 국민의 사랑을 얻는 길은 국익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옷차림처럼 작은 데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정치가 국민의 사랑을 얻는 길은 국익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옷차림처럼 작은 데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개혁신당과 진보당 의원들도 한복 차림으로 민주당과 뜻을 같이 했다. 이와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상복 차림이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근조(謹弔) 의회민주주의' 리본을 착용한 채 어두운 표정으로 본회의장으로 들어섰다.

본래 의상은 그 자체가 가진 상징성과 함께 전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 때문에 정기국회 첫날, 국회 본회의장 같은 공적 공간에서 '한복'과 '상복'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 같다. 과연 양대 정당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국회의원들의 옷차림은 단순한 패션을 넘어 유권자인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올여름 날씨는 '폭염 한계선'을 무너뜨린 52년 만의 극한 더위였다. 국민들은 정장에 갇혀 있는 의원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과연 현실의 더위를 알고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만도 했다.

어찌 보면 국회의원들의 정장 차림은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올여름 극한 더위에 이런저런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덥고 답답했다. 얼마나 더울까. 아니, 저들의 저 넓은 공간은 얼마나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들은 한 푼의 냉방비도 아껴야 하는데.

굳이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을 거론하기 이전에 한복의 인기는 널리 퍼졌다. 한복의 세계화는 1986년 한국과 프랑스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패션쇼를 통하여 첫 발을 디뎠다. 그 이후 한복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까지, 한복의 세계화를 향한 발걸음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 조지 부시 대통령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였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제1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21개국 정상들이 한복 착용을 경험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침 오는 10월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앞두고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한복을 입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지난 5월 말, 미국 상원은 하나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6월 12일부터 8월 마지막 목요일까지를 'Seersucker Thursday(시어서커 입는 목요일)'로 지정하자는 법안이었다. '시어서커'란 통기성이 좋고 가볍지만, 격식도 유지할 수 있는 여름용 직물이다.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우둘투둘한 '지지미'이다.

이 직물은 인도가 원산지이고 18세기에 영국을 통해 유럽으로 퍼졌다. 19세기에는 덥고 습한 미국 남부에서 노동자들이 즐겨 입던 것을, 1920~30년대 들어 미국 상류층 남성들이 여름 정장으로 애용하게 되었다. 특히 워싱턴DC의 무더운 여름을 견뎌내야 하는 정치인들이 시어서커 정장을 입는 문화로 이어졌다.

'시어서커를 입는 목요일' 지정은 단순한 옷차림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다. 더위 속에서도 전통을 살리고, 동시에 유머와 화합을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한 전통은 정파를 초월하는 화합의 힘을 지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정치가 국민의 사랑을 얻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국익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옷차림처럼 작은 데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 첫 날, 한복과 상복으로 갈라선 본회의장 모습은 한국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되묻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