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썬카'라는 회사는 이름을 '영썬모빌리티'로 바꿔 새 포지셔닝 전략 구사
사람의 마음에는 '상품의 방'이 있다. 상품이 무한하니 그 '방'도 무한하다. 인간의 마음도 넓다. 무한한 '상품의 방'을 품을 수 있다. '포지셔닝'은 이 '상품의 방'에 대한 것이다. 방 속에 있는 많은 상품 중 순위를 높이거나, 아예 방을 새로 만드는 '전략'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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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셔닝(Positioning)'이란, 말 그대로, '(잠재)고객의 마음속에 상품의 위치를 설정하는 작업'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받을 여지는 있다. '포지셔닝'이란 용어와 '상품의 위치 설정'이란 용어는 동어반복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용어나 개념의 설명이라기보다는, 영어를 한국말로 풀어쓰는, 그저 '뜻풀이 수준'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마케팅의 기본 '포지셔닝' … 설명방식은 제각각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어권에서도 마케팅 전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포지셔닝에 대한 개념 정의는 그 정도에서 그친다. 좀 더 진도를 나가면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정의를 넘어 구체적인 설명이나 전략으로 들어가면 정도가 더 심하다. 많은 방식이 난무한다.
포지셔닝은 마케팅 분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대부분의 학문 분과에서 이런 개념들은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다. 그러니 그 정의나 설명방식이 다양한 것도 이해가 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의 정의나 설명방식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현대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이들은 그저 '선구자' 정도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필자에게도 나름의 설명방식이 있다. 하지만 다른 마케팅 전문가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아니 모든 마케팅 전문가들이 시도하는 포지셔닝에 대한 정의나 설명방식은 '상품의 판매'에 맞춰진다. 어떤 포지셔닝 전략이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일까?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 그 같은 '도구적 시각' 대신 '사회과학적 시각'을 중시한다. 필자는 현대 자본주의를 '과잉생산 체제'로 규정한다. 또한 이 체제는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부채'의 체제적 특성을 갖는다. 필자는 '마케팅'이 이 같은 '과잉생산' 또는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부채' 체제의 유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그 핵심에 포지셔닝 개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 아래 필자는 포지셔닝의 개념과 방법론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자, 우선,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동차와 관련된 단어나 이미지는 셀 수 없이 많다. 승용차, 버스, 택시, 벤츠, 도요타, 삼륜차, 사륜차, 이륜구동, 사륜구동, 트럭, 현대, 기아, SUV, 캠핑카, 롤스로이스, 페라리, 흰색 차, 검은색 차, 스포츠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자동차를 자동차라 부르는 것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의자 또는 책상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이 질문은 사실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다. 역사도 아주 오래됐다. 2500년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이도스' 등의 개념에 같은 맥락의 질문과 답이 녹아있다. 플라톤이 말한 '스키마'의 개념은 20세기 들어 영국의 심리학자 프레드릭 바틀릿(Frederic Bartlett)에 의해 심리학 개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AI개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자,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떠올랐던 자동차의 분류를 시도해 보자. 현대나 기아, 벤츠나 BMW는 '브랜드'로 묶일 수 있다. 버스나 택시, 승용차, 트럭 등은 '기능별' 자동차 분류다. 이륜이니 사륜이니 하는 것은 자동차의 '구동축 기능'으로 묶을 수 있고, 블랙이니 화이트니 하는 것은 '컬러'로 묶인다. 슈퍼카나 고성능카, 스포츠카 등은 자동차의 '성능'에 따른 분류다.
세 번째 단계다. 이제 이 '자동차'라는 사물을 우리 마음속에 있는 '방(room)'이란 개념과 연관시켜 불러 보자. '자동차'는 '큰 방'이다. 그 안에 '작은 방'이 여럿 있다. '브랜드방'이 있고, '기능방'이 있고 '성능방'이 있고 '컬러방'이 있다. 각 방에는 방의 '이름'에 걸 맞는 것들이 들어 있다. '브랜드방'에는 브랜드들이, '기능방'에는 다양한 기능의 자동차들이 있다. 물론 '작은 방'은 또 다른 '작은 방'으로 나뉜다. '기능방'에 소속된 승용차는 '승용차방'으로 쪼개질 수 있다. 버스는 '버스방'으로, 트럭은 '트럭방'으로 나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다. 이제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각 방에 있는 자동차 관련 '사물'들이 너부러져 있다. 이제 이들을 정리해야 한다. 계단형 정리함을 갖다 놓고 차례대로 올려놓자. 비싸고 좋은 것은 위에, 싸고 안 좋은 것은 아래에.
일단 '브랜드방'을 정리해 보자. 어떻게 될까? 롤스로이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의 브랜드는 맨 위 단에, BMW나 벤츠는 그 아래, 그리고 그들보다 대중적인 차들은 그 아래 단에 놓이게 될 것이다. '기능방'의 차들은 각 개인의 취향에 맞게 정리될 것이다. 누구는 승용차를 맨 위 단에 누군가는 SUV 차량을 맨 위 단에 놓을 것이다. '성능방' 정리는 슈퍼카-고성능카-스포츠카 순으로 가능하다.
자, 이제 한 기업이 새 차 하나를 출시했다 치자. K대표는 아내의 이름을 따 '영썬(YS)'이란 브랜드로 차를 내놨다. 영어로는 '영썬(Young Sun)'으로 발음되며 '젊은 태양'이란 뜻을 갖는다. 회사명도 '영썬카'로 지었다. 하지만 이 차는 보통의 차와 다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플라잉 카(Flying Car)'다. 그래도 차는 차다. 고객은 이 차를 마음속에 있는 '자동차'라는 큰 방에 넣어둘 것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브랜드방'에, 기능별 특성은 '기능방'에, 성능별 특성은 '성능방'에 넣어둘 것이다.
■ '신규 지동차 기업'에서 '신산업 창시자' 되기

그렇다면 이 차 '영썬'은 각각의 방에 비치된 계단식 정리함 어디에 위치할까? '브랜드방'에 들어간 '영썬'을 생각해 보자. 거의 밑바닥일 것이다. '기능방'에서는, 애매하지만, '승용차' 라인에 들어갈 테고 '승용차방'에서의 위치는 개인마다 편차가 클 것이다.
그렇다면 '성능방'에서는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하늘을 날 수 있는 자동차'다. 계단식 정리함 가장 높은 곳에 놔도 되지 않을까? 대표는 이 '성능'을 무기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추후 '브랜드방'에서도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것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트라우트와 리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기왕에 있던 방 말고 다른 방을 만들면 어떨까요? '자동차방' 내부의 작은 방으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 방'을 새로 만들면 바로 그 방 주인이 될 거예요. 정리함 맨 위에 유일하게 자리를 잡겠지요.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큰방'을 새로 만드세요. '자동차방' 말고 '모빌리티방' 어떨까요? '땅을 달리는 운송체'는 '자동차'로, '하늘을 나는 운송체'는 '모빌리티'라 부르자는 거예요. 이름도 '영썬카'에서 '영썬모빌리티'로 바꾸세요. 그럼 '자동차방'에 버금가는 '모빌리티방'의 창시자가 되는 거지요. '청량음료방'을 만든 코카콜라처럼 말이죠."
아! K대표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대로 자동차 이름은 물론 회사명도 바꿨다. '영썬모빌리티'로. 그러자 '신규 자동차기업'에서 '신산업의 창시자'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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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