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는 물론 여당도 건설에 신중모드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은 공통점이 참 많았다. 특히 날짜와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명 '속도전'이었다. 기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부분이 희한하게 닮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박 대통령의 꿈이었다. 64년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을 보고 충격을 받고, 67년 대선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엄청난 건설 비용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반대가 극심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결사 반대였다.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과 김대중은 나중에 건설 현장 도로에 드러누워 작업을 방해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언론도 반대였다. '교통량이 적다'라는 세계은행 보고서가 반대의 중요한 이유였다.
여당인 공화당도 찬성이 아니었다.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경제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정 회장만큼은 고속도로 건설 의지를 꺾지 않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진행해 나갔다.
사실 고속도로 건설 이전에 박 대통령과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만난 일은 없었다. 고속도로에 꽂힌 박 대통령이 태국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는 정 회장을 부른 게 인연이었다.
430억 원의 최저 공사비로, 총 428km의 고속도로를, 3년 안에 건설한다는 황당무계한 목표는 박정희와 정주영이라는 '속도전 대가'들이 의기투합한 결과였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기공식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이때도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모든 아이디어를 짜냈다. 정 회장에게 '시간은 곧 돈'이었다. 최저 공사비로 이익을 남기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정 회장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기계화'였다. 불도저 한 대의 작업량과 인부 50명의 작업량을 비교해 보면 어떤 게 더 기간을 단축할 방법인지 자명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중장비를 사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계속>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