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3 00:20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하와이의 수난사에 비쳐진 미국
[김성희의 역사갈피] 하와이의 수난사에 비쳐진 미국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9.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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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거짓말'이라는 책을 보면 위대하기는 커녕 옹졸하고 추하게 비쳐져
95편의 글이 실렸는데 '하와이 대왕' 동상은 '검은피부 로마 장군'으로 묘사
1893년 하와이 거주 미국인들이 미 해군 앞세워 하와이 왕조기반 무너뜨려
미국 국회 의사당의 '국립 조상 전시관'에는 하와이 원주민의 모습이 아닌 로마 장군을 닮은 카메하메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트럼프 대통령 2기를 맞아 미국에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MAGA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우리나라에선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란 MASGA가 구명지책인 듯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거짓말』(제임스 로웬 지음, 갑인공방)에 따르면 이는 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미국 내 산재한 역사적 기념비나 동상 등 기념물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의 실상을 드러낸 이 책을 읽어보면 미국은 위대하거나 아름답기는커녕 옹졸하고 추한 나라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95편의 글이 실렸는데 이 중 아주 '사소한' 사례 하나만 소개한다.

하와이 초대 국왕 카메하메하 1세의 동상 이야기다. 1758년경 하와이 빅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카메하메하는 뛰어난 지능과 개인 전투력, 서양군대와 능력 있는 고문들과 신하들을 활용하여 1810년 역사상 최초로 하와이의 모든 섬을 통합했다. 우리로 치면 '개국 시조'이고 '대왕'이었으니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878년 하와이 의회의 비폴리네시아 출신 의원 월터 깁슨이 제임스 쿡 선장의 하와이 '발견'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카메하메하 동상 건립을 제안했다. 하지만 기념물 건립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깁슨의 원맨쇼로 카메하메하 동상은 원주민들 의사와는 동떨어진 희한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깁슨은 보스턴 출신 조각가 토머스 R. 굴드에게 작품을 의뢰했는데 그는 하와이에 와본 적도 없었고 몇 안 되는 카메하메하 초상화를 공부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굴드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동상을 제작했으니 굴드가 만든 카메하메하는 "기본적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로마 장군으로, 코카서스인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진" 인물로 '재탄생'했다.

로마인의 코를 가지고, 긴 로마식 망토를 걸치고, 지팡이나 창을 수직으로 든 로마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하와이 원주민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카메하메하의 동상은 우여곡절 끝에 1883년 데이비드 칼라카우아 왕의 대관식에 맞춰 호놀룰루 이올라니 궁전 앞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 유럽 중심주의의 산물인 카메하메하 동상이 지켜봐야 했던 것은 자신이 세운 왕국의 멸망이었다. 유럽인들은 1887년 칼라카우아에게 백인에 유리한 헌법에 서명하게 했는데 하와이 왕국은 이미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 콜레라, 나병 등으로 인구가 격감하는 등 쇠망의 길을 걷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에 1893년 하와이 거주 미국인들 162명이 미 해군을 앞세워 칼라카우아의 후계자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몰아낸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카메하메하 왕의 실제 모습이 그의 동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듯이 '하와이 왕국'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미국 국회 의사당의 '국립 조상 전시관'에는 로마 장군을 닮은 카메하메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게 사소하지만 '위대한 미국'의 참모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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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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