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6 06:40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면도기의 역사를 아시나요
[김성희의 역사갈피] 면도기의 역사를 아시나요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8.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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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때 로마인은 머리털과 눈썹을 제외한 체모를 혐오해 하층민이나 수염 길러
자연히 노예나 이발사에게 면도를 맡겨야 했으니 깔끔한 턱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1880~1901년 80여 개의 안전면도기 특허출원…질레트,세계면도기 시장 70% 장악
미 육군대령, 알래스카에 근무할 때 물이 얼어 붙어 면도 할 수 없자 전기면도기 발명
로마제국 때는 '면도' 자체가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역사를 읽는 재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용품의 기원을 뒤져낸 『사물의 민낯』(김지룡·갈릴레오 SNC 지음, 애플북스)을 읽다 보면 그런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성형수술에서 커피까지, 49가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의 흥미로운 장면을 접하게 된다.

남성들이 얼굴에 난 수염을 깎는 '면도' 자체가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 되었던 때가 있단다.

로마제국 때 이야기인데, 고대 로마인들은 머리털과 눈썹을 제외한 체모를 혐오했고, 하층민이나 이민족이 수염을 길렀다. 한데 당시로선 변변한 거울이나 손에 잡히는 날카로운 칼날을 구하기 어려운 만큼 스스로 수염을 깎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자연히 노예나 이발사에게 면도를 맡겨야 했으니 깔끔한 턱은 부의 상징이 되었을 수밖에.

이후 유럽에선 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이 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면도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염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잔털을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전한 면도의 초석은 1762년 프랑스의 장인 자크 페레에 의해 놓여졌다. 그는 칼날 주변에 나무를 덧대 면도 중 피부를 보호하는 장치를 개발하고는-안전면도기의 조상이라 하겠다-1769년에는 『혼자서 면도하는 법』이란 책까지 내서 자기 발명품을 홍보했다. 웃기는 사실은 그의 발명품이 자기들 밥그릇을 뺏어간다고 이발사들이 반발했다니 그 '발명품'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면도기의 역사는 1880년 다시 한 번 큰 전기를 맞는다. 독일의 캄페 형제가, 얼굴에 수직으로 닿는 칼날 모양을 개선한 '괭이형 면도기'를 만든 것이다. 이들이 만든 '스타 면도기'는 면도 솜씨보다 면도기의 성능이 안전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면도기 특허 출원이 쏟아졌다. 미국에서만 1880~1901년 사이에 80여 개의 안전면도기 특허가 출원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발명품도 칼날이 무뎌지면 갈아서 사용해야 했기에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덜어준 것이 질레트가 만든 '탈착형 면도기'였다. 면도날이 닳으면 그것만 교체해 사용할 수 있는 질레트의 제품은 오늘날 전 세계 면도기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질레트에 이어 면도기 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 은퇴한 미 육군대령 제이콥 쉬크가 만든 전기면도기. 그는 알래스카에 근무할 때 물이 얼어붙어 면도를 할 수 없자 물 없이도 면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기모터를 이용한 면도기를 개발해 1929년 특허를 받고 1931년부터 제품을 시판했다. 물이나 크림 없이 면도가 가능하고 얼굴에 칼자국을 낼 일이 없는 면도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쉬크의 전기면도기는 면도에 따르는 '유혈 사태'를 방지해준 덕분에 오늘날에도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소소한 '역사'를 알게 되면 주변의 사물들이 새삼 다시 보이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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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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