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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왜 붉은색은 공산주의 상징 됐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왜 붉은색은 공산주의 상징 됐나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7.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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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 소동을 '레드 퍼지' (적색분자 추방)로 묘사
1917년 러시아 혁명때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파, 붉은 깃발을 내세워
중국도 건국하면서 붉은바탕에 별 다섯개 그린 '오성홍기' 국기로 채택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붉은 색이 공산주의의 색으로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얼마 전 제주 우도에 난데없이 '오성홍기'가 휘날린다는 뉴스가 국민감정을 건드렸다. 빨간 바탕에 별 다섯 개가 그려진 '오성홍기'는 중국의 국기이기에 우리 땅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 보며, 이전만큼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는 멸칭(蔑稱)으로 부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는 말하자면 빨간색을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본 셈인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만의 호칭은 아니다. 군국주의 일본제국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반체제파를 싸잡아 '아카(アカ·빨갱이)'라 불렀고, 미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른바 매카시 선풍으로 공산주의자 색출 소동이 벌어졌을 때 이를 '레드 퍼지(Red Purge·적색분자 추방)'이라 일컬었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쓴 『전쟁과 디자인』(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교유서가)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붉은색은 고대 로마 제국부터 군복 등에 많이 사용되었단다. 총 등 원거리 공격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전쟁이 백병전에 가까운 근접전 형태로 벌어졌기에 눈에 잘 띄어 피아 식별이 쉬운 빨간색이 선호되었다는 설명이다. 서양에서 군사 방면에 널리 쓰이던 빨간색이 성큼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은 1791년 무렵이었다.

절대왕정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든 시위대를 향해 군대가 발포하는 바람에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리게 되자 이를 상징하는 붉은색이 저항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잘 아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와 더불어 붉은 깃발이 거리에 나부끼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붉은 색이 공산주의의 색으로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파는 혁명 반대세력과 한동안 내전을 치러야 했는데 이들은 붉은 깃발을 내세웠다. 이른바 적군(赤軍)의 탄생이다. 본래 러시아 민중은 붉은 색을 가장 선호했다. 얼어붙은 러시아 풍경 속에서 붉은 색이 눈에 잘 띄고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붉은색은 검은색과 더불어 인쇄비도 적게 들고 기술수준이 낮아도 쉽게 인쇄 가능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때 반혁명군은 제정러시아의 깃발을 내걸었으니, 그 깃발 윗부분은 흰색이어서 '백군(白軍)'이라 불렸다. 적군을 지지하던 러시아 아방가르드파의 그래픽 디자이너 엘 리시츠키는 내전이 한창이던 1920년 그 유명한 '붉은 쐐기로 흰색을 공격하라'는 전쟁 포스터를 만들었다. 검은 배경 속 흰 원에 붉은 쐐기가 꽂히는 모양은, 문자를 잘 읽지 못하는 러시아 농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이렇게 해서 1922년 볼셰비키가 승리해 소련이 탄생하자 붉은 바탕에 파괴와 건설을 뜻하는 망치와 낫, 그리고 작은 별이 그려진 깃발이 국기로 채택되었다. 소련에 이어 1949년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도 붉은 바탕의 '오성홍기'를 국기로 채택했다. 공산 진영의 두 거인이 붉은색을 '국가 색'으로 정하면서, '빨갱이'는 걸맞은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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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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