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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버그'는 실제 '벌레'였다
[김성희의 역사갈피] '버그'는 실제 '벌레'였다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6.2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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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여성과학자 호퍼가 1947년 신형 컴퓨터 마크Ⅱ에서 오작동의 원인 찾아
패널 F 70번 계전기에서 나방 발견 … 컴퓨터의 오류나 오작동 현상을 정의
컴퓨터가 이해하는 단일화 된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해 코딩 기반 다져
그레이스 호퍼는 197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의 '어머니'로 꼽힌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

이건 진리다. 과거를 절대시하는 회고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지난날의 흔적이 모여, 혹은 작용해 오늘의 현실,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를 콘셉트로 한 책이, 스웨덴의 저널리스트가 쓴 『1947년 현재의 탄생』(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이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년 만에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일"들이 벌어졌다며 그해 있었던 다양한 기록을 소개한다. 이 중 흥미로운 대목은 컴퓨터 버그에 관한 대목.

그레이스 호퍼란 미국의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들어봤는지? 190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일곱 살 때 집안의 시계 7개를 분해해 놀았던, 싹수 있는 '공순이'였다. 진보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그녀의 부모 덕분에,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물리학과 수학으로 이학사 학위를 딴 뒤 1934년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영재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 해군에 자원입대한 호퍼는 함포의 탄도 계산에 참여하다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전자기계식 컴퓨터 마크Ⅰ을 개발한 하워드 에이킨의 스태프로,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파일러 개발에 헌신했다.

그러던 중 1947년 9월 9일 신형 컴퓨터 마크Ⅱ가 계산 도중 수치 오류를 내자 마크Ⅰ을 쓰는 데 이미 익숙했던 호퍼가 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당시 마크Ⅱ는 방 하나를 채울 만한 크기였는데, 컴퓨터 내부로 통하는 복잡한 길을 찾아낸 호퍼는 결국 패널 F의 70번 계전기에서 나방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것이 컴퓨터 오작동의 원인임을 알아낸 호퍼는 그날 일지에 나방을 테이프로 붙여놓고는 "버그bug가 발견된 최초의 실사례"라고 기록했다. 오늘날 컴퓨터의 오류나 오작동을 일으키는 현상을 '버그bug'라고 일컫는데, 그 기원은 호퍼가 처음 발견해서 제거한 실제 '나방'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레이스 호퍼는 197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의 '어머니'로 꼽힌다. "원하는 작업을 정의해 줄 수 있다면 컴퓨터가 그 작업을 정확히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호퍼가 코볼의 전신인 플로우-매틱(FLOW-MATIC)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21세기 한국의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코딩 열풍이 부는 것은 호퍼가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단일화된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1966년 연령 제한에 걸려 중령으로 퇴역했던 호퍼는 해군에 기여한 공로로 재입대와 퇴역을 한 번 더 거친 후 1986년 준장으로 완전히 퇴역했다. 이때 나이가 79세 8개월로 미 해군의 현역 최고령 기록에서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1992년 세상을 떠난 뒤 학계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는가 하면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을 가리치는 건물을 '호퍼 홀'로 이름 짓는 등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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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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