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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아테네의 '도편추방제'
[김성희의 역사갈피] 아테네의 '도편추방제'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6.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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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에 요즘으로 치면 최고통치자 '탄핵'에 견줄만한 제도 도입
6년 반 만에 한명씩 국외 추방 … 지도자가 '대중 영합'에 빠질 우려 낳아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운용이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발명' 되었다, 고 우리는 알고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아르콘(최고 통치자) 추첨제를 도입했고, 독재자(참주)가 될 만한 사람을 투표를 통해 국외로 쫓아내는 도편(陶片)추방제-요즘이라면 탄핵이 그에 견줄 만하다-를 도입했으니 그럴 만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왕정이 득세하던 2,800년 전에 '시민'이라면 신분에 관계없이 최고 권력을 행사할 기회가 열려 있었으니 아테네는 그런 명예를 누릴 권리가 있다 하겠다.

한데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김응종 지음, 푸른역사)를 보면 조금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제목을 보면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단편적 사실(史實)들을 그러모은 책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서양사 학자가 작정하고 쓴, 진지한 책이다. 여기 마지막 장이 '아테네 민주정의 경이'인데 대중독재와 관련해 도편추방제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참주(僭主)가 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써서 그 결과에 따라 추방 여부를 결정하는 도편추방제는 클레이스테네스가 마련했다. 처음 실시된 것은 기원전 487년으로 이후 70년 동안 모두 11명이 추방되었으니 지도급 인사가 6년 반에 한 명꼴로 나라 밖으로 쫓겨난 셈이었다.

도편추방의 절차는 나름 신중했다. 도편추방이 필요한지 여부를 정하는 투표를 먼저 실시한 후 필요하다고 결정되면 '추방 희망자'의 이름을 적어냈는데 6천 표 이상이 모이면 개인별 집계를 내서 최다 득표자를 추방하는 식이었다. 단 그 대상은 특정인이 아니라 무작위로 선정되었는데, 선동을 방지하기 위해 토론 없이 투표가 진행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추방이 결정된 사람은 10일 이내에 아테네를 떠나 10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당사자에게만 해당되었고, 재산이나 시민권은 보전되었으니 나름 온건한 제도였다. 하지만 민주정치를 위한 이런 안전장치도 시간이 갈수록 변질되어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예를 들면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기원전 483년 추방된 귀족파의 우두머리 아리스테이데스와 얽힌 에피소드가 그렇다.

어떤 시골 사람이 자기가 가진 조개껍질에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써 달라고 옆에 있던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부탁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그에게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느냐?"고 묻자 "얼굴도 모르지만 아리스테이데스가 항상 의인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란 답이 돌아왔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의인답게 자기 이름을 써주고 결국 추방됐다.

이런 식이었으니 역사가들은 도편추방 되었던 11명 중 3명만 제도의 취지대로 추방 명분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지은이는 이런 사실을 들어 아테네식 민주주의는 독재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대중독재를 실시했다면서 도편추방제는 정의롭지 못한 제도였다고 지적한다. 실제 아테네의 뛰어난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30여 년간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내내 추방될까 두려워했으며 그 결과 대중에 영합하는 정책을 취해 이웃 도시국가들을 압박했다.

결국 아테네인들도 도편추방의 변질을 인식했기에 기원전 417년 휘페르볼로스의 추방 이후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운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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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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