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04:00 (화)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2) 대통령 선거와 색깔 정치학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2) 대통령 선거와 색깔 정치학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5.06.1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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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 10개국 모두에서 가장 선호하는 색깔은 파랑
한국 정치 '색의 상징성' 변모 … 원래 파랑은 보수, 빨강은 진보였는데 2012년 대선부터 바뀌어
선거는 감정의 흐름이고 때론 색깔로 표출 … 색의 상징속에 국민 소망이 숨어있음을 잊지 말길

선거 결과는 언제나 숫자로 요약된다. 어느 정당이 국회의원 지역구 몇 석을 얻었는지, 특정 후보의 지역별 득표율이 얼마였는지 등등. 그런데 선거 보도에서 숫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깔이다.

6월 3일 21대 대통령선거도 그랬다. 대한민국 지도를 뒤덮은 색깔의 물결, 색깔의 파도는 단순한 정당의 상징을 넘어, 유권자 집단의 심리와 정서를 표현하는 감정의 언어가 되었다.

색은 단순한 시각 자극에 그치지 않는다. 뇌에서는 이 색들을 감정으로 번역한다. 붉은색은 심장을 뛰게 하고, 파란색은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나아가 색은 우리의 생리 반응에 영향을 주고, 무의식적인 판단과 선택까지 이끈다. 그래서 색은 패션의 언어이자, 광고의 전략이며, 정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파란색은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세계적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2015년 실시한 국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 10개국 모두에서 가장 선호하는 색이 파란색이었다. 색채심리학자 에바 헬러의 연구 조사(독일인 1000명 대상)에서도 파란색은 가장 선호하는 색이었다. 에바 헬러는 파란색을 '신뢰', '이성', '평온'의 상징이라고 했다. 인간은 바다와 하늘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파랑으로 투사한다.

이번 선거에서 파란색의 압승은 단지 진보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원하는 감정의 방향을 드러낸 결과일 수 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닥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 혼란, 정치 불안 등에 지친 사람들은 흥분보다 안정을, 분노보다 이성을, 혁명보다 정리정돈을 원했을 것이다. 요행히도 이번 선거에서 파란색은 그 심리를 정확히 대변했다.

2025년, 한국 유권자는 파란색을 통해 '이성적인 안정'을 택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흥미로운 점은 한국 정치에서 색의 상징성이 과거와 바뀌었다는 점이다. 원래 파랑은 보수, 빨강은 진보의 색이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보수가 빨강, 진보가 파랑을 차지했다. 여기에는 선거판에 뛰어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빨간 상의가 큰 역할을 했다.

색은 바뀌었지만, 색이 말하는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반적으로 빨간색은 힘, 열정, 자신감과 동시에 분노, 경고, 위험을 상징한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진보주의, 혁명, 좌파 등을 상징하는 색이다. 파란색은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주의, 중도우파 또는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같은 색의 감정을 정치 이념의 상징으로 이용한다. 서구 국가들에서도 통상 파란색이 보수, 빨간색이 진보를 나타낸다. 한국도 2012년까지는 보수가 파랑, 진보가 빨강을 썼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을 계기로 보수가 빨강, 진보가 파랑으로 뒤바뀌었고, 이 같은 정당 이미지를 상징하는 색의 역전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미국도 색깔을 중심으로 정당의 정체성이 고착된 나라다. 민주당이 파란색, 공화당이 빨간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파란색을 앞세워 '상식과 안정의 회복'을 주장하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눌렀다. 그런데 2024년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빨강의 트럼프'를 선택했다. 같은 색을 사용하였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물론 정당의 색으로 선거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무의식 어디엔가 색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묘하게도 미국의 2020년 대선 상황이 이번 한국 유권자의 선택과 유사한 맥락으로 읽힌다. 2020년의 미국과 2025년의 한국 모두 '회복의 언어'가 되는 파란색을 원했다. 이와 반해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빨강의 트럼프가 선택되었다. 바이든 정부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열정, 공격성, 그리고 변화를 이끌 강력한 리더십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는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정치 불안과 국제 정세의 요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 그리고 사회 갈등 속에서 치러졌다. 이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감정은 바로 '안정'과 '회복'이었다. 운 좋게 민주당이 파란색을 선택하고, 변화보다는 질서, 투쟁보다는 회복을 암시했던 점이 유효했다고 생각된다. 정당은 색을 입고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유권자는 그 색을 통해 감정을 이입하였다.

파란색 정당은 이겼고, 정책은 평가받았으며, 인물은 선택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당과 후보 이미지를 나타내는 색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선거는 곧잘 숫자로 설명되지만, 시대정신은 색으로 전달된다. 2025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파란색이었다. 파란색의 선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정에 대한 열망이자, 이성을 향한 회귀였으며, 혼란을 끝내고 싶은 유권자들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의지였다.

선거 결과가 단순히 정당의 이미지 색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는 숫자의 싸움이지만, 선거는 감정의 흐름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때때로 색깔이라는 가장 단순한 상징에 담겨 표출된다.

2025년, 한국 유권자는 파란색을 통해 '이성적인 안정'을 택했다. 색의 상징적 의미 속에 국민의 소망이 숨어있음을 잊지 말고, 파란 하늘 같이 넓고, 투명하고 여유로운 역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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