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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권력과 금력'이 망친 언론
[김성희의 역사갈피] '권력과 금력'이 망친 언론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5.1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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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과 금융계 필독 신문이었던 독일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의 '얄궃은' 퇴진
경영난 겪자 경영권 인수뒤 히틀러'생일선물'로 나치당에 넘겨 '정권 나팔수' 전락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1919~1933)에 이름을 떨친 고급지였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누군가가 그랬다. 국가와 재벌 그리고 종교는 언론을 소유하거나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건대 자기들 이익 또는 신념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그리하여 여론을 오도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지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과 제대로 된 언론 간의 긴장 관계는 근현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탁월한 역사서 『유럽문화사 Ⅳ』(도널드 사순 지음, 뿌리와 이파리)에 나오는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의 얄궂은 운명도 그런 예에 속한다.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1919~1933)에 이름을 떨친 고급지였다. 발행 부수는 5만~7만 부에 불과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외교 등 온갖 상황이 어지럽던 독일에서 이름을 떨친 고급지였다. 덕분에 독자의 13퍼센트가 전문가였던 이 신문은 특히 금융계에서 필독 기사로 꼽힐 정도로 경제면의 성과가 높았다.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은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진보 계열, 그러니까 중도좌파의 언론사였기에 국가사회주의를 내세워 실세로 부상하던 나치당이 보기엔 썩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이 신문을 유대인 인텔리겐차의 기관지로 규정하면서 이 신문이 지식인 "떨거지들"을 상대로 그들의 구미에 맞춰 보도한다며 "민중을 독살하고 기만하는 그들의 용어인…언론의 자유를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은 부자 독자들을 겨냥한 고급 신문은 고급 광고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독자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한때 기세를 올렸지만 그 끝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대기업 비판 등 중도좌파 논조 탓에 점차 광고를 잃으면서 빚에 허덕이는 상태로까지 몰렸다. 게다가 나치가 차츰 권력을 잡으면서 이 신문은 꾸준히 '오른쪽'으로 걸으며 자기 색깔을 잃고 종내는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쫓아내고 이 신문의 대표적 필자가 '차악(次惡)'이라 비판하던 대상에 무릎을 꿇었다.

신문을 창간한 레오폴트 조네만의 후손들이 1934년 독일 최대의 기업인 화학공업 카르텔 이게파르벤에 주식을 넘겨버렸던 것이다. 이게파르벤은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지역에서 모은 노예노동을 이용해 덕을 보고, 나아가 유대인 대량학살에 쓰인 독가스 치클론B를 생산했다는 이유 등으로 종전 후 임원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정에 서고 마침내 해체되었던 '전범 기업'이었다.

그랬으니 『프랑크푸르터 차이퉁』의 운명은 뻔했다. 걸리적거리던 언론을 손에 넣은 이게파르벤은 신문을 계속 보유하는 것에 흥미를 잃고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선물'로 나치당에 넘겨버렸으니, 진보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꼴이었다.

권력과 금력이 언론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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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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