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6 19:05 (일)
[김성희의 역사갈피] 고구려 봉상왕의 악행
[김성희의 역사갈피] 고구려 봉상왕의 악행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5.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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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를 풀어 전공을 세운 숙부 죽이고 동생은 역모 누명 씌워 사약 내려
사치와 향락 일삼다가 지진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 흉년민심 ' 흉흉해져
국상 등이 나서 '봉상왕 폐위' 작전 전개 할 때 '노화삽관' 고사성어 나와
'노화삽관(蘆花揷冠)이란 말 속에는 갈대꽃을 관에 꽂아 (쿠데타) 뜻을 같이한다는 표시를 했다는 일화가 담겨있다.

'노화삽관(蘆花揷冠)이란 말이 있다. 갈대꽃을 관에 꽂아 (쿠데타) 뜻을 같이한다는 표시를 했다는 일화로, 『한국고사성어』(임종대 편저, 미래문화사)에 실렸다. 그러니 한국 고유의 고사성어(故事成語)라는 이야기다.

고구려 13대 서천왕(재위 270~292) 때 일이다. 만주 동북방에 살던 숙신족이 침범해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다. 이에 왕은 평소 무예가 뛰어났던 아우 달고(達賈)에게 이들을 물리치라고 명한다.

달고가 싸움터로 나아가 숙신족 대장을 죽이고 단로성 등 여러 성을 빼앗는 공을 세웠다. 이에 서천왕은 달고에게 양맥과 숙신 두 부락을 주고 칭찬했다. 왕의 아우에, 큰 전공을 세웠으니 달고 일족의 앞날은 탄탄대로로 보였다.

아니었다. 서천왕이 죽고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봉상왕(재위 292~300)이 즉위한 후 달고의 삶은 일변했다. 봉상왕은 천성이 오만하고 의심이 많았으니 숙부라 해도 권세가인 달고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군사를 풀어 달고를 처치했던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뿐만 아니다. 봉상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아우 돌고(咄固)에게 역모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렸는데 이때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은 도망쳐 수실촌이란 곳의 부잣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비류강의 뱃사공이 되어 목숨을 이어갔다.

이후 봉상왕은 대궐 공사를 크게 일으키는 등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는데 때마침 지진과 가뭄이 이어지는 바람에 흉년이 들어 민심이 크게 흉흉해졌다. 그렇게 6년이 흐르자 결국 국상(國相) 창조리를 비롯한 조불, 소우 등 신하들이 나라를 바로잡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봉상왕의 조카인 을불을 새 임금으로 모시기로 하고 조불과 소우가 을불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마침내 비류강가에서 뱃사공을 하던 을불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도성으로 모셔온 뒤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봉상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후산으로 사냥을 나서게 되자 창조리, 조불, 소우는 이를 틈타 거사(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했다. 창조리는 임금을 갈아치우려 모여든 사람들에게 "우리와 뜻을 같이할 사람은 나처럼 하라"며 갈대를 꺾어 관에 꽂았다. 이에 동조자들이 모두 이들을 따라 갈대꽃을 관에 꽂았다. 그러니 '노화삽관'은 이를테면 '혁명의 횃불' 같은 것이라 하겠다.

모든 사람의 뜻이 같은 것을 확인한 창조리 무리는 드디어 봉상왕을 폐하여 별실에 가두고, 을불을 모셔다 왕위에 오르게 하니 그가 고구려 제15대 왕 미천왕(재위 300~331)이다. 이는 『삼국사기』를 인용해 책에 실린 내용이다. 뒷이야기를 보태자면 조불 등을 만나 처음에는 "나는 야인이지 왕의 후손이 아닙니다. 부디 다시 살펴보십시오"라고 나서기를 꺼렸던 을불은 왕위에 오른 뒤 낙랑·대방군을 점령하는 등 영토 확장과 왕권 안정화에 성공해 고구려 융성의 토대를 마련한 명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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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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