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0:40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어처구니 없는 '황제 프로젝트'(首長工程)
[김성희의 역사갈피] 어처구니 없는 '황제 프로젝트'(首長工程)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5.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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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가 아버지 '주원장 공덕비'로 쓸 돌 구하라고 명령
산채만 한 커다란 비석 재료로 받침돌 등을 모두 합하면 높이가 73미터에 달해
장인들에 할당량 정해 몰아붙여 그때 죽은 장인들의 무덤 '머리무덤'으로 불려
황제는 입으로만 떠들고 아랫사람은 비위를 맞추는데 열심이어서 벌어졌던 일
선거 때면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달나라 옥토끼를 잡아 오겠다는 식의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이 난무한다.

선거 때면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달나라 옥토끼를 잡아 오겠다는 식의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이 난무한다. 경제적 효과나 타당성에 앞서 정치적 목적만 고려한 건설 공약이 그중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건설 이래 막대한 적자만 쌓여가는 여러 지방공항이 이같은 정치적 결정에 따른 적폐라 할 수 있다.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천쓰이 지음, 글항아리)이란 책이 있다. 중국의 언론인 출신이 쓴 역사 에세이를 모았는데 이 중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정치적 공사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난징(南京) 동북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양산(陽山)이란 산이 있다. 바로 옆으로 닝후(寧濾) 고속도로가 지나지만 경치가 빼어난 곳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긴 산길을 지나야 하기에 일반적인 여행객들은 잘 찾지 않는 곳이란다. 한데 지은이에 따르면 여기 꽤 볼 만한 풍경이 있다.

바로 민둥산 위에 있는 산채만 한 커다란 비석 재료다. 이 비석 재료는 받침돌과 본체, 가첨석을 모두 합하면 높이가 73미터에 달하니 24층짜리 빌딩 높이에 이른다. 올려다보면 거대한 성이 서 있는 느낌이라는데 이게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의 작품(?)이다.

명나라 태조의 넷째 아들인 주체는 장손인 주윤문이 2대 황제 건문제로 즉위하자, 조카를 무력으로 끌어내리고 황위에 올랐다. 자연히 찬탈을 합리화할 정치적 명분을 찾는 데 열을 올렸는데 그 노력 중 하나가 문제의 주원장 공덕비이다. 주원장은 살아생전에 자기 무덤을 건설하기 시작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이미 17년간에 걸쳐 기본이 완성된 상태였다. 영락제는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즉위 이후 11년 동안 이 무덤을 완공했다. 이 과정에서 묘지 앞에 선친의 공덕비를 멋지게 세우고 자신이 쓴 비문을 새겨 넣으려고 했다.

이를 위해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영락 3년(1405) 비석으로 채취한 돌을 찾으라 명했으니 이때 발굴한 것이 양산의 비석 재료라고 한다. 자, 황제의 명이니 신하들은 얼마나 딸랑거렸을까. 비석 재료를 캐내기 위해 관원들은 장인들에게 하루 할당량을 정해주며 가혹하게 몰아붙였으니 백성들의 고초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그때 죽은 장인 등이 묻힌 곳을 지금도 '분두촌(墳頭村·머리 무덤 마을)'이라 부를까.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양산 비석 재료의 결말이다. 어찌어찌 캐내기는 했지만 당시의 운반수단이나 기술로는 이 거대한 석재를 울퉁불퉁한 산길을 거쳐 난징으로 옮겨갈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영락 11년(1413)에 주원장의 묘에 높이가 9미터도 되지 않는 조촐한(?) 공덕비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은이는 황제는 입으로만 떠들어도 상관없고, 책임질 일도 없으며 아랫사람은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이어서 벌어졌던 일이라며, 오늘날 황제는 사라졌지만 각급 '지도자'들 중에는 '황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아 막무가내식 '지도자 프로젝트'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중국만의 경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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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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