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07:50 (화)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0) 대통령 후보들의 '분장술'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40) 대통령 후보들의 '분장술'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5.04.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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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 때 한 장의 천으로 두른 '토가'가 깨끗 할수록 ' 청렴함 '상징
선거 나온 일부는 하얗게 보이려고 토가에 석회가루 뿌리는 일도 다반사
현대판 석회가루 덕지덕지 뿌리고 미사여구로 치장한 후보에 속지 말길

선거 제도는 고대 로마 시대에도 존재했다. 지중해의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거대한 제국을 이룬 로마는 왕정, 공화정, 원수정의 정치체제를 거쳤다.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27년) 500년 동안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평민 중에서 뽑은 '호민관', 최고의회로 국가의 정책 결정과 외교·군사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원로원', 원로원의 추천을 받아 시민들로 구성된 민회에서 선출돼 행정 및 군 지휘권을 가진 '집정관' 등이 권력을 나눠 나라를 다스렸다.

로마 문명이 멈춘 곳,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에는 당시 선거구호 벽보와 후보자 지지 문구를 적은 주택 벽, 공직 후보자들이 지지해달라고 호소한 연설단(檀), 투표소 등 로마 공화정 시대 선거운동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로마 시대 선거 제도는 공직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의 등용문이었다. 당시 공직 후보자들도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 자리가 높든, 낮든 선거에서 경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고자 하는 간절함은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된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그 시대 로마인들은 '토가(toga)'라는 겉옷을 입었다. 요즘 복식으로 보면, 옷이라기보다는 한 장의 커다란 천을 몸에 걸치는 덮개였다. 당시 토가는 입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 빈부와 직업까지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에는 당시 선거구호 벽보와 후보자 지지 문구를 적은 주택 벽, 공직 후보자들이 지지해달라고 호소한 연설단(檀), 투표소 등 로마 공화정 시대 선거운동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공직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색 토가를 입었다. 이는 자신이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치장(治粧)이었다. 정직과 청렴은 그 시절에도 귀한 덕목이었던 모양이다. 공직 후보자들은 토가가 하얄수록 더 깨끗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부 후보자들은 흰 토가 위에 하얀 석회 가루를 뿌렸다. 당시에도 나름의 표백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우리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당시로선 분명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과연 로마 시민들은 석회 가루를 듬뿍 뿌린 토가를 입은 후보자에게 표를 주었을까. 아니면 토가 색깔에 현혹되지 않고, 해당 공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택했을까.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대통령 구속과 구속 취소 사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이르는 길고도 가슴 졸이는 과정을 거쳐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벌써부터 후보들의 온갖 분장과 달콤한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방황하고 있는 내 한 표를 돌아본다.

'대통령 복도 지지리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제목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자 유권자의 민낯을 드러내는 고백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는 역대 선거에서 대통령들을 뽑아왔고, 그 선택의 결과 여러 차례 뼈아픈 상처를 입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실패가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반복해온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자주 실패하는가. 그 실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시대를 뒤흔들었던 사색당파의 피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흐르는 것은 아닐까. 보수-진보 진영부터 지연, 학연 등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선택의 실패'를 예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판 석회 가루를 덕지덕지 뿌리고 미사여구로 치장한 후보에게 속아 한 표를 던지려고 하지는 않는가.

지난해 12월 3일 밤, 거리에서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과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움직인 군인·경찰 덕분에 치르는 이번 6·3 대선에서만큼은 실패한 선택이 아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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