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4:26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병사의 군량이나 돈이었던 초콜릿
[김성희의 역사갈피] 병사의 군량이나 돈이었던 초콜릿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4.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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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제국 때는 금이나 은 대신해 카카오 원두가 '법정 화폐' 역할
유럽에선 정력제로 몇백년 인기 끌다가 1800년 초반 커피에 밀려
네덜란드 기술자가 카카오 원두서 지방 분리해 '초콜릿 인기' 회생
초콜릿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은 16세기 유럽인의 신대륙 침략 와중에 에스파냐의 코르테스가 이 지역의 아즈텍 왕국을 점령하면서다.

시국이 하수상하니 괜시리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이 생각난다. 해서 『나쁜 초콜릿』(캐럴 오프 지음, 알마)을 들춰 봤다. 캐나다 언론인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초콜릿에 얽힌 탐욕과 폭력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네슬레며 허쉬 등 초콜릿의 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업들의 이야기도 담겼지만 여기서는 초콜릿의 '시작'만 맛보기로 한다.

초콜릿의 시작은 3,000여 년 전 중앙아메리카에서다. 그곳의 올메크족은 야생 카카오 원두의 끈끈하고 진득거리는 지방질 건더기에 물과 녹말을 섞은 후 먹었다. 마야인들이 이곳을 지배하게 된 뒤로는 '카카오 물'이란 뜻의 카카후아틀을 마셨는데, 거무스름하고 쓰디쓰면서도 맛이 풍부한 이 초콜릿 음료는 중독성도 있어 흥분제 겸 영양제로도 쓰였다. 뿐만 아니라 피로와 절망 공포에 젖기 쉬운 병사들의 군량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는 제국을 지탱하는 축이었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금이나 은 같은 광석은 워낙 흔해서 아스텍인은 금과 은을 돈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대신 카카오 원두가 마야 제국 때부터 법정 화폐로 쓰여 채색 점토나 돌로 카카오 원두를 위조하는 사업이 번창할 정도였으며 상품 가격도 카카오 원두의 개수로 매겨졌다. 노예는 100개, 매춘은 10개, 칠면조는 무려 200개의 원두를 치러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콜릿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은 16세기 유럽인의 신대륙 침략 와중에 에스파냐의 코르테스가 이 지역의 아즈텍 왕국을 점령하면서다. 그전까지는 초콜릿은 감자나 토마토처럼 중앙아메리카에만 알려졌다. 점령 초에 코르테스는 카카오를 꺼림칙한 거품투성이 음료의 주원료로서가 아니라 통화로, 그러니까 '액체로 된 황금'으로 보았다. 당연히 코르테스는 에스파냐 왕에게 카카오 생산의 통제권을 장악했다는 자랑이 섞인 보고를 보냈고.

이후 식민지 지배자들은, 카카오 액에 카리브 해에서 생산된 설탕을 첨가해 카카후아틀의 맛을 자기들 입맛에 맞췄는데 이 과정에서 카카후아틀은 '초코아틀'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늘날 초콜릿의 선조가 된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 전해진 초콜릿은 정력제, 흥분제로 몇백 년간 인기를 모아 약품 가게에서 팔렸으나 1800년 초반에 이르러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기름지고 껄끄러운 초콜릿 음료 대신 세련되고 차려내기 쉬운 차나 커피에 밀려서였다. 이때 초콜릿을 구원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기술자 판 하우턴이다. 그는 수압식 압착기를 이용해 카카오 원두에서 지방을 분리하는 법을 개발해 1828년 특허를 받았다. 덕분에 '더치Dutch 코코아'란 상표가 붙은 갈색가루가 든 병이 유럽 전역의 식료품점 선반을 휩쓸게 되어 초콜릿 음료를 되살려냈다.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니 어째 초콜릿의 쓴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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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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