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단체 '박약회'를 세워 군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사업도

국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선보이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기틀을 닦은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이용태 명예회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이용태 명예회장은 이 무렵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출력할 수 있는 터미널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했다. 이를 통해 국내 정부·공공기관의 행정 시스템 전산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일찍이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예견한 이 명예회장은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삼보엔지니어링은 이듬해 국내 최초의 PC인 'SE-8001'를 내놓았다.
삼보컴퓨터는 1982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미국 애플2 컴퓨터의 호환 기종 '트라이젬20'을 생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삼보컴퓨터가 PC를 내놓자 청계천 세운상가의 중소 업체들도 애플 호환 기종 생산에 나섰다. 이후 금성사·삼성전자·대우전자 등 대기업도 PC 시장에 진출했다. 1990년대 국내 컴퓨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자 삼보컴퓨터는 '국민 PC' 기업으로 불리며 급성장했다.
인터넷 시대 초창기인 1996년 이 명예회장은 한국전력과 함께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사) '두루넷'을 설립해 회장에 올랐다. 고인은 1997년 9월 두루넷 대표로서 이용호 당시 한국전력 사장과 함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나 초고속 정보통신 공동 개발을 약속받기도 했다.
두루넷은 국내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해 전국 가정과 기업에 저렴한 인터넷 서비스를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여세를 몰아 1999년 미국 나스닥(NASDAQ) 시장에 상장했다. 고인은 무선호출(삐삐) 서비스 회사 나래이동통신도 설립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의 시장 진출과 대만·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삼보컴퓨터와 두루넷은 실적이 악화됐고, 이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공익단체 '박약회'를 세워 군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사업을 해온 이 명예회장은 2016년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 이홍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차남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 발인은 18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