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1:45 (화)
[이만훈의 세상만사] ⑪개판 5분 전(開板 五分 前)을 아시나요
[이만훈의 세상만사] ⑪개판 5분 전(開板 五分 前)을 아시나요
  •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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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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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때 난민 돕기위해 밥짓던 가마솥 열기 전 5분상황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덤비던 장면 묘사
민주주의 위기 초래하는 요즘 세태를 비유…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담당자들의 절제 필요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본능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부(富)를 창출해내는 사회원리이다.

세상이 온통 '개판'이다. 질서라곤 쥐뿔만큼도 없고, 그렇다 보니 원칙도, 이성도, 배려도, 체면도, 눈을 씻고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개판'은 '개판 5분 전'의 줄임(縮約)이다. 한국전쟁 동안 피난지 부산에서 난민 구휼(救恤)을 위해 대형 가마솥에 '꿀꿀이죽'을 끓여 나눠줬는데, 배식을 하느라 나무판대기로 된 가마솥 뚜껑을 열기 5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이 죽 한 방울이라도 더 얻을 요량으로 덤벼드는 통에 빚어지는 서글프고 비참했던 현장 묘사가 유래다. 한자로 쓰면 ''開板 五分 前'이다.

하지만 요즘엔 '개(犬)가 주름잡는 판국(板局)'이란 의미로 더 통하고, 쓰인다. 발음이 같은 데서 비롯된 묘한 전화(轉化)다. 물론 여기서 개는 '개만도 못한 저질 인간'의 비유다. 따라서 먹을 거라면 똥오줌 가리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개처럼 무법 무질서의 끝장이 오늘 날의 '개판'이다. 세상이 이렇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무절제한 탐욕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개똥철학'이고, 실제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적 한계이자 내재적 병폐의 발로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본능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부(富)를 창출해내는 사회원리이다. 그 독특한 장점 덕분에 백여 년 남짓한 역사(그나마 우리는 훨씬 짧다!)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전에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이름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원리다.

자본주의의 꽃이자 원리를 구현하는 장치는 기업이고, 또 기업은 자본과 노동, 그리고 이 둘을 잘 섞어 결과로 부를 만들어내는 경영이란 세 가지 요소가 필수다. 얼핏 생각하면 세 요소가 산술적 균형을 이루는 것 같지만 현실에선 자본에 의해 경영과 노동이 하부구조로 종속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경영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 부분도 노조에 의해 다소 견제는 받을지라도 자본의 주도적 위세는 어쩌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본주의 아래선 시간이 지날수록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부의 양극화가 숙명이다. 한마디로 '있는 놈(者)'의 세상이 된다. 이런 세상에선 돈이 최고다. 돈에 따라 교육의 수준과 질도 결정돼 이미 경제활동이고 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돈 없이 출발해 따라잡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천의 용'은 이미 씨가 마른 지 오래고, 패자부활전이란 마당조차 언제 있었나 싶다. 태어나기 전부터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의해 카스트(Caste)가 결정되는 사회가 아닌가?

대한민국에선 서울이고, 서울하면 강남이란 건 이미 '현대사회론(論)'에서 공리(公理)일진데도 어느 개그우먼의 '대치맘' 풍자가 새삼 통렬한 건 '병(病)든 서울', 병든 자본주의의 명징한 증명이다. 네 살배기한테 영재 모멘트를 발견했다며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는 물론 기타 수행능력평가에 대비해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까지 분야별 명인(名人)을 초빙해 특별과외를 하는 세상-. 평당 1억 원이 넘는 호가를 껌 값처럼 여기는 아파트가 즐비한 그곳에 한 번이라도 기웃거려 본 청춘하고 그렇지 못한 청춘하고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곳 출신들이 좋은 직업, 좋은 직장은 다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를 하위 카스트 별로 나누는데 그나마 찌꺼기조차 차례가 오지 않아 맑은 손가락을 빨며 빈둥대는 청년 백수들이 널려 있다.

올 2월말 기준으로 120만 7000명이나 된다. 이는 지난 해 2월(113만 4000명)에 비해 7만 명 넘게 는 것이다. 이러니 무슨 수로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는 말인가. 이네들은 연애, 결혼, 출산의 '삼포(三抛)'를 진즉 넘어 요즘엔 집과 경력까지 포기한 '오포(五抛)', 그리고 희망ㆍ취미와 인간관계마저 더해 '칠포(七抛)'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도 많다. 이네들은 자본주의의 병폐가 낳은 '괴물'로 우리 사회를 불안케 하는 잠재적 폭탄이다. 이들이 어떤 계기로 연대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면 그게 바로 민란(民亂)이다. 그렇지 않고 개별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몹쓸 짓으로 터뜨린다면 살인 등 강력범죄의 가능태(可能態)가 120만이나 존재하는 셈이니 오싹할 따름이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 나라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범(17명) 김대두(金大斗)가 털어놓은 범죄동기 중 하나는 지금도 끔찍하게 유효하다. "남들보다 잘살고 싶었는데 나를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빛도 많은데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자본주의와 함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해온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기본으로 다수결(多數決)이란 수단에 의존해 갈등을 조정ㆍ해결하는 원리이자 시스템이다. 이는 권력의 피라미드를 이루며 최고 정점에 있는 1인의 영도(領導)아래 체제를 유지하는 왕조나 독재정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民主主義)란 글자 그대로 주권(主權), 즉 권력이 백성들한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정치사회원리이자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회가 운영되려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선 주권의 주체인 민(民)이 직접 참여해 행사했다. 이른바 직접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대상의 규모가 작아서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은 규모가 크고 구성 등이 복잡해 문제를 푸는데 모든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정비율로 주민대표를 뽑아 민의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내지 국가를 운영한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데 있다. 주권의 크기가 공평하게 같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다수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뜩이나 죽기 살기로 덤비는 판에 AI 등 첨단기술을 탑재한 속임수가 넘쳐난다. 설사 합법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가장 기본 수단이면서 또한 민주주의를 배반(?)할 위험인자가 바로 '다수결의 원칙'인 셈이다. 어떻게든 이기면 되는 세상이니까. 주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부터 다수결의 지배를 받고, 이들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데도 다수결이 동원되니 현대 민주주의국가들은 늘 '배반된 민주주의'에 함몰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독일의 나치정권도 독일 국민 대다수로부터 '괄목할 만한 정도'의 인기와 대중적 지지를 얻어 기반을 마련했고, 국민투표란 '합법적 다수결 방식'을 통해 체제를 정당화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1883~1945)의 파시스트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옛날 민주주의만 그런 게 아니다. 사정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도 권력의 기반은 대중적 지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독일소녀단, MAGA, 개딸들, 홍위병 등등의 역할을 보라!) 더구나 요즘엔 공산주의 국가들도 '인민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 운운하며 투표랍시고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주장한다. '다수의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바이든 정부가 했던 것들을 깡그리 지워대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B. Zelensky) 대통령을 불러다 놓고 멋대로 휴전을 핑계로 희토류(稀土類)를 지원대가로 내놓으라고 겁박하는 것도 정당한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나치의 '홀로코스트(Holocaust)'에 치를 떨면서도 자신의 부패 스캔들을 모면하기 위해 '가자(Gaza)전쟁'을 일으켜 숱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유대인 수괴'는 또 어떻고? 이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선거를 통해 약진하는 현상도 민주주의의 병폐의 심각성을 증명하고 있지 않나? 결코 1930년대 파시즘과 오늘날의 '대중독재(大衆獨裁)'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심각하다 못해 아찔하다. 지난 대선에서 고작 0.73%p 차이(24만7077표)로 대통령을 차지한 윤석열과 패배한 이재명의 집요한 싸움으로 끝내 계엄과 탄핵이란 변고(變故)를 불러와 나라가 결딴나기 직전이 아닌가.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이 윤석열의 헛발질을 유도해 총선에서 압승으로 역전(?)의 실마리를 잡자 탄핵을 남발해 국정을 마비시키다시피 해 삼권분립을 위협했고, 이에 열 받은 윤통이 '병정놀이'수준의 계엄으로 '땡깡'을 부리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버렸다. 나라살림이야 거덜 나든지 말든지, 백성들이 죽든지 말든지-.

#일본계 3세 미국인이자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72)는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나자 '역사의 종말(The End of Hstory)'이라고 선언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냉전이라는 기간 동안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많은 투쟁을 거치면서 승리를 거머쥔 만큼 더 이상 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 체계가 없기 때문'에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중국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엄존하고,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데도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그 주장이 힘을 잃었다. 게다가 테러나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 급진 좌파 온존 등등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끊일 새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여러 사회 갈등 중에서도 '보수 대 진보' 간 갈등(77.5%, 이하 복수 응답)을 가장 심각하다고 여겼다. 바로 민주주의의 결함 중 '다수결'의 대결이 첨예하게 맞붙는 현장이자 결과이다. 그 뒤를 이어 '빈곤층 대 중산층'(74.8%), '노사(勞使)'(66.4%)간 갈등이 차지했는데 이는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병폐'가 드러난 것이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원리나 제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또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존엄을 보장하는 길임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서 쓸 것인가가 문제다.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담당자들의 절제가 필요하고, 또 그런 대표를 뽑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독재성향이 있음에도 국민의 다수한테서 선택을 받은 지도자라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끔 새롭고 꼼꼼한 '민주화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공화정 신봉자였던 로마의 집정관 소(小) 카토(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영어론 Cato the Younger,기원전 95~기원전 46)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잘못 됐으면 그를 뽑은 국민의 죄도 함께 크다!"

굳이 풀이를 하자면 대통령이고, '국쾌의원(匊獪狋猿· * 김지하 식 표현)' 잘 못 뽑았으면 손가락을 어쩌고저쩌고 객적은 허풍일랑 떨지 말고, 잘못한 만큼 고통을 받아 싸다는 얘기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머지않아 '큰 장'이 설 모양이다. 또 다시 '머리 수'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판가름 되는 걸 봐야 한다. 내 머리 네 머리, 네 머리 내 머리…. 이래저래 백성들 머리가 터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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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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