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3:5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치 부역자' 단죄의 교훈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치 부역자' 단죄의 교훈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3.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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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병사 상대로 영업한 카페와상점 주인,미소를 띤 소녀들도 공격 타깃
프랑스에선 팔다리 절단, 강간, 강제 매춘 등 온갖 고문과 성적 학대 자행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정치가 탄핵정국후 '야만의 정치'로 이어질까 걱정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데 이어 5월 8일 독일 야전군 사령관 빌헬름 카이텔이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끝났다.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데 이어 5월 8일 독일 야전군 사령관 빌헬름 카이텔이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끝났다.

공식적으로. 역사 교과서는 수년 동안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쟁을 이렇게 문장 한두 줄로 정리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어떤 전쟁 후유증을 앓았는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한 편이다. 역사는 큰 '사건'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종전 후 유럽 대륙을 휩쓴 피의 복수, 잔인한 인종 청소에 주목한 논픽션 『야만 대륙』(키스 로 지음, 글항아리)은 인간과 문화, 역사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그중 눈길이 갔던 대목은 전후 부역자 처리이다. 나치 독일은 전쟁 중 적어도 12개국에서 직간접적으로 지배했고, 6개국 이상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는 군대만을 통해 이뤄질 수는 없었다. 각국에서 수만 내시 수십만 명의 '협력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나치 독일이 패퇴하자 이들에 대한 단죄가 행해진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영국의 저술가인 지은이는 이 부역자 처벌이 야만적으로 이뤄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치 치하의 정치가, 관료, 극우 민병대원은 물론 나치 선전에 적극적이었던 언론인, 예술가가 도마에 오른 것은 그렇다 치자. 한데 나치 병사들을 상대로 영업한 카페와 상점 주인이며 독일인에게 미소를 보인 평범한 부녀자와 소녀들도 공격 타깃이 됐다.

게다가 이들에 대한 복수 또는 처형이 한동안 마구잡이로 이뤄졌다. 네덜란드에선 대중이 직접 '반역자'들에 대한 법률을 집행하는 '참수의 날'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벨기에에선 대독 부역자들의 집이 경찰의 묵인 아래 불탔고, 이탈리아에선 파시스트들의 시체를 거리에 전시해 행인들이 발로 차거나 침을 뱉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에선 비밀리에 부역 혐의자들을 수용하는 지하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팔다리 절단, 강간, 강제 매춘 등 상상 가능한 온갖 고문과 성적 학대를 자행했다.

결국 벨기에에서는 독일군이 쫓겨난 뒤 41일 동안 일어난 거의 모든 '저항' 활동에 대해 모른 척 해주기로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종전 후 첫 12주 동안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선 5개월 반 동안 발생한 복수 살인에 대해서는 사면해주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로 처벌받아야 할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이탈리아의 한 신문은 이런 상황이 폭력을 정당화한 나치즘의 악영향 탓이라면서도 "야만인을 타도한다 한들 그들을 모방해서 똑같이 될 뿐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설사 그것이 불법적이라도-이든 허용되어야 하는가 또는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잔혹사를 읽다 보면,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가 탄핵 또는 개헌 이후에는 '야만의 정치'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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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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