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외국인위한 만찬 주재할 때 정 회장의 연설내용 '왜곡한' 통역에게 현장 불호령
40년대 자동차 수리업 할 때 영어로 된 자동차 부속을 모두 외워 영어실력의 기초 닦아

정 회장의 영어 실력도 화제였다. 정 회장이 공식 자리에서 영어를 쓰는 걸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었다.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 전문 통역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1983년 홍콩에서 제12회 여자농구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 일이다. 75년 방콕 대회부터 이 대회에 참가한 중국은 출전 하자마자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이 대회에서도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한국이 2위와 3위를 번갈아 할 때였다. 82년부터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 회장도 이 대회를 보러 갔다.
하루는 정 회장이 만찬을 주최했다. 중국과는 아직 수교 전이었다. 만찬 주최자로서 인사말을 할 때였다. 대한체육회의 영어·불어 통역 전문가가 통역을 맡았다. 당시 상황을 옮겨본다.

정 회장 "대한민국은 3,500만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통역 "(영어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4,000만 명입니다." 정 회장 "이봐, 내가 언제 4,000만이라고 했어?" 통역 "회장님, 우리나라 인구는 현재 4,000만입니다. 그래서 제가 수정해서 통역했습니다."
정 회장 "통역이 그대로 전달해야지 왜 함부로 고쳐." 인사말 도중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다시 인사말을 이어갔다. 정 회장 "소련군이 평양에 진군해서 북한을 점령했고." 통역 "(영어로) 소련군이 평양에 진군, 북한을 지배했고, 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정 회장 "이봐, 내가 언제 한국 전쟁 얘기했어?" 통역 "추가 설명을 곁들였을 뿐입니다." 정 회장 "이 사람, 이거 안되겠구먼." 통역은 나름 센스 있게 하려고 했다가 정 회장이 정확하게 지적하는 바람에 혼이 났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정 회장 말을 그대로 옮겼음은 물론이다.
정주영 회장이 전경련 회장 시절, 한국-대만 경제협력위원회에 배석했다가 정 회장의 영어를 직접 들었던 현대 임원이 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정 회장의 영어는 실전 영어라고 했다. 짧게 요점만 얘기하는 형태였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다고 했다.
정 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동차 부속품 이름으로 영어를 배웠다고 말했었다. 40년대 자동차 수리업체인 '아도 서비스'를 인수했을 때 영어로 된 자동차 부속을 모두 외운 게 영어 실력의 기초가 됐다는 것이다.<계속>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