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히 적용하면 인사 장애물 부작용도… 회사 규모에 따라 유연 해져야

기업에서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조직관리의 한 방편으로 취업규칙 외에 하위 규정들을 어떤 종류를 얼마만큼 자세히 규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흔히들 회사에서는 규모와 관계없이 인사규정,복무규정,평가규정,승진규정,총무규정,비품관리규정,법인사용카드규정 등의 자세한 규정을 두려고 한다.
회사 규정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사결정의 신속성이다. 기업은 하루에도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는데, 사소한 의사결정에까지 시간을 전부 소비할 수는 없다. 비품사용규정이 대표적이다. "책걸상은 5년 사용이 원칙이다"라고 정해놓으면, 그와 관련된 문제에서 별도의 판단 과정이 필요없다.
둘째, 의사결정의 통일성이다. 가령 평가규정에 "어느 본부든지 상위피평가자수는 20%를 넘을 수 없다"고 정해놓으면, 상위고과 배분자를 둘러산 본부간의 갈등과 불필요한 분쟁을 줄여준다. 분쟁뿐만 아니라, 이런 의사결정의 통일성은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의 결정을 신뢰하게 만든다. 중요한 결정인데 그에 따른 명확한 규정이 없다면, 직원들은 "모든 결정은 회사 사장 마음대로이네"라는 불신을 가지게 된다.
셋째, 규정을 통해 회사와 직원 간의 책임과 의무가 분명해진다. 직원은 규정을 통해 자기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별하게 되고, 해서는 안될 짓을 하게 될 경우 징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사가 일일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회사의 업무 질서가 규정의 존재만으로 유지된다.
이런 규정의 긍정적 측면을 생각한다면, 기업이 성장하고 직원 수가 늘어나면서 조직관리를 위해 다양한 규정을 도입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복무규정, 평가규정, 승진규정, 총무규정 등 세부 규정은 직원의 행동과 회사의 운영 방침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규정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규정은 그 속성상 직원들에 대한 통제수단 이기도 하지만, 회사도 그 규정에 구속되기 때문에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게 되고, 회사가 규정을 안 지켰을 경우 회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 "징계전력자는 3년간 승진을 할 수 없다"는 승진심사규정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회사에 반드시 승진을 시켜 큰 프로젝트를 맡겨야 할 직원이 1년 전 업무사고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면, 이 회사는 규정대로라면, 해당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만약, 그 직원을 꼭 승진시켜야할 필요성이 있어 승진시키면, 징계전력이 있는 직원들이나 승진을 하지 못한 직원들로부터 내심 "회사가 규정을 무시하며, 징계전력자를 승진시켰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규정이 오히려 회사의 의사결정을 제약하고 내부 불만을 야기하는 사례는 꽤 많이 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와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말 사이에서 회사가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규정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회사 의사결정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모든 회사가 동일한 수준의 규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 수가 적은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는 최소한의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 성장에 따라 규정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 도입도 인사, 복무, 평가 등 조직 운영에 필수적인 영역에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그 규정에도 예외 조항이나 상황에 따른 유연성을 포함시켜, 경영상 필요에 따른 조정을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규정이 있다고, 그냥 둘 것이 아니라, 규정이 실제 운영에 적합한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시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규정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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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졸업 후 중앙일보 인사팀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년 이상 인사·노무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율탑노무사사무소(서울강남) 대표노무사로 있으면서 기업 노무자문과 노동사건 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회사를 살리는 직원관리 대책', '뼈대 노동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