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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세일럼 '마녀재판'의 교훈
[김성희의 역사갈피] 세일럼 '마녀재판'의 교훈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1.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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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어촌서 목사의 조카가 발작과 이상행동 보이자 목사 하녀이자 노예를 마녀로 지목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사회적 혼란과 불신 이어져 … 마녀사냥 이용한 정치적 탐욕도 가세
역사를 뒤져보면 집단지성보다 대중의 광기가 더 유효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민주정치의 핵심 원리 중 하나가 다수결의 원칙이다. 이는 다수의 판단이 소수의 판단보다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이런 의사결정 방식이 만능인 것은 아니다.

역사를 뒤져보면 집단지성보다 대중의 광기가 더 유효했던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근세사에 등장했던 마녀재판이 대표적일 터다. 『마녀의 역사』(Future Publishing 지음, AK)를 보다가 '세일럼의 마녀재판'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마녀재판은 유럽대륙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알지만 이 경우는 비록 미국 독립 이전 일이지만 아메리카대륙에서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1692년 1월 매사추세츠의 한적한 어촌 세일럼에서 새뮤얼 패리스 목사의 9살 난 딸 엘리자베스 패리스오 사촌 애비게일 윌리엄스가 발작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증세를 보였다. 이들을 진찰한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악마의 소행으로 돌렸다.

마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호밀과 환자의 오줌을 섞은 '마녀 케이크'를 만들어 먹이는 등 소동을 벌인 끝에 패리스 목사의 하녀인 카리브해 출신 노예 티투바가 마녀로 지목됐다. 티투바가, 패리스 목사에게 구걸하러 온 세라 굿과 1년이 넘도록 교회에 나가지 않는 병든 노파 세라 오즈번을 공범으로 지목한 데다 비슷한 증세를 보인 소녀들이 늘어나면서 대중의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지 버로스란 목사가 '강력한 요술'을 펼쳤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기도 했고, 먀녀로 지목된 81세 자일즈 코리는 가슴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는 압석 고문을 받으며 빵 두 조각과 물밖에 먹지 못한 채 이틀을 버티다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불과 200가구도 못 되는 세일럼 마을에서 100명 이상이 마녀와 연관됐다는 고발을 당했으니 주민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이후 9개월 동안 여성 14명, 남성 5명이 교수형을 당한 후에야, 자기 부인도 마녀로 고발당하는 처지에 이르러 매사추세츠 총독 윌리엄 핍스가 마녀재판 법정을 해산하도록 함으로써 이 악몽은 끝났다.

오늘날 세일럼의 마녀재판 소동을 보는 역사가들의 눈은 다양하다. 일단 최초로 발작 증상을 보인 소녀들은 깜부기나 부패한 호밀에 중독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여기에 전통적 농가 중심의 세일럼 빌리지 주민들과 신흥 기업가 계층이 사는 세일럼 타운 간의 지역 갈등이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마녀재판 피고들이 세일럼 타운에 많았다는 데서 나온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세일럼의 유력 가문인 퍼트넘 가는 토지분쟁을 벌이고 있던 포터 가 사람들을 46명이나 마녀로 지목해 마녀재판 소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재산관리권을 가진 '독립' 여성의 피고발 비율이 높았던 점을 들어 이들을 기존의 부권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제거하려 했다는 의견도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빚어진 사회적 혼란과 불신, 이를 이용한 정치적 탐욕이 어우러진 '세일럼의 마녀재판'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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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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