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68조6616억원 … 가계대출의 78%
대형 부동산 관련기업이 언론을 소유 하는 등 '감시역' 소홀
한국 경제가 어렵다. 내수, 수출, 환율, 부채 등 뭐 하나 좋은 게 없다. 거기에 계엄과 탄핵 등 정치 리스크까지 더해진다. 이제 많은 이의 시선이 부동산으로 쏠린다. 이게 터지면 경제에 진짜 망조가 들 수 있다. '과잉생산' 이론으로 작금의 부동산 문제를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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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의 위기설이 나온다. 그룹의 간판 롯데타워까지 담보물로 나왔다. 문제의 근원으로 두 가지가 꼽힌다. 그룹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해왔던 롯데케미컬과 최고 아파트 브랜드를 만든 롯데건설의 적자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개의 과잉생산 파도가 동시에 몰려온 탓이 크다. 하나는 정유산업 부문에서 일고 있는 세계적 과잉생산의 파도가 그것이요, 또 하나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일고 있는 주택 과잉생산의 파도가 그것이다.
■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중국의 정유산업

정유생산 부문에서의 과잉생산을 중국에 한정시키려는 의견도 있다. 즉, 중국 내 정유산업 부문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저가ㆍ밀어내기 판매로 우리나라 정유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컬이 겪는 어려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유 관련 제품의 생산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과잉생산이며 결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 정유업계가 맞고 있는 현실은 중국 정유기업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자국의 낮은 인건비와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치킨게임'은 문제로 삼기 어렵다. 자기 스스로도 손실을 감내하는 전략이며 시장경제 아래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도 2000년대 초 '치킨게임'을 벌였고 여기서 살아남아 결국 지금의 최강자가 됐다.
중국 정유 기업들이 벌이는 치킨 게임은 세계적인 과잉생산의 결과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자. 오늘은 롯데그룹을 엄습하는 또 하나의 과잉생산, 즉 주택 과잉생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시작 전, 이미 얘기했던 과잉생산과 관련된 가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➀기업 간 과잉경쟁으로 ➁제품의 과잉생산이 일어나고, ③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은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동원한다, ④이때 소비자는 임금이 아닌 부채를 통해 제품을 구입하며 ⑤이 과정에서 개인과 기업은 과잉부채에 시달리고 ⑥이는 국가 차원의 경제위기를 일으키며 ⑦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한다, ⑧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궁극적으로 과잉생산은 가계ㆍ기업ㆍ국가 모두에게 과잉부채라는 문제를 안긴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가설'은 '일반론'이다. 구체적인 산업을 들여다보려면 그 산업의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도 이 같은 '특수성'이 있다.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벌어지는 '과잉'의 수준이다. 무엇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가 이미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빈집 수가 많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2024년 기준 전국의 빈집이 150만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분양 아파트의 증가도 불가피해 보인다. 2024년 10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6만6000가구, 완공 후에도 분양이 되지 않은 악성 미분양 아파트가 1만8000채를 넘어섰다. 인구감소 시대임을 감안하면 주택과잉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택'이라는 상품이 '과잉 상태'인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폐허가 된 '시골 빈집'을 '주택'이라 볼 수 있느냐는 반론에서 서울ㆍ수도권 지역 또는 새집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다거나 가구 수의 증가로 주택보급률도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요모조모 따져 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다주택자나 빈집ㆍ미분양 문제 등을 고려해 볼 때 전국적 차원에서 과잉생산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내 주택문제는, 지금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이해가 얽혀 있다. 기업과 국민은 물론 언론이나 나아가 국가와도 관계가 깊다. 더욱이 이 '이해관계'는 거의 '제로섬(Zero Sum)'에 가깝다. 부동산 가격은 보통 '우상향' 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익'은 '가진 자', '손실'은 '없는 자'의 몫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따라서 '부동산 이익 추구 집단'은 보통 '가진 자'이며 이들은 부동산의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 건설업, 임금근로자 8%에 GDP 15% 차지

이제 부동산의 가격 상승을 꾀하는 '부동산 이익 추구 집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가장 먼저 건설업 관계자를 꼽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전국적인 규모의 거대 시공ㆍ시행사뿐 아니라 지방의 중소 시공ㆍ시행사들, 그리고 건축 자재와 인테리어 회사들까지 포함된다. 이들은 '더 많은 집'을 '더 비싼 가격'에 팔수록 이익이 커진다. 당연히 더 많은 주택 건설과 더 높은 주택 가격을 원한다. 부동산 중개업자들 역시 이 '집단' 중 하나다. 이들 또한 '더 많은 집'을 '더 비싼 가격'에 팔아야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다른 산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생산자와 기획자, 판매자 등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제품 판매에 적극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과 일반시장의 생산-판매 과정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언론이 직접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일 텐데, 대형 부동산 관련 기업이 언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모기업인 부동산 관련 기업의 수입에 민감하며,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불가피하게 모기업의 이익을 위해 동원될 수도 있다. 소유주가 부동산 관련 기업이 아니라 해도 대부분의 언론은 부동산시장에 민감하다. 그들은 엄청난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사가 건설 관련 부문에서 올리는 수입이, 많게는, 20~30%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역시 부동산 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다. 부동산 산업은 워낙 거대해 나라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2023년 기준 8만8000개 기업이 506조7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관련 종사자수는 181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2200만 명)의 8%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한다. 정부 세수에 대한 기여도도 엄청나다. 법인세 빼고도 걷는 세금이 많다.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증여세, 부가가치세 등은 국세로, 취득세, 재산세, 등록면허세, 지역자원시설세 등은 지방세로 귀속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은 아파트 등 부동산이 전체 자산의 70%를 차지한다. 주식 등 금융자산 보유 비율은 30%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주식 등 금융자산이 70%다. 큰 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은 주식시장이, 우리나라는 부동산시장이 망가지면 큰 일 난다. 국가경제도 무너지고 국민의 삶도 피폐해진다. 우리에게 부동산 가격 하락은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 국가의 부담을 늘리는 위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은행도 중요한 참여자다. 우리나라 은행은 주로 낮은 예금 이자와 높은 대출 이자에 따른 '예대마진'이 주 수입원.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등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 PF 등 부동산 관련 기업대출이 최대 수입원이다. 2024년 8월 기준 시중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642억 원. 이중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568조6616억 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의 78%에 이른다. PF 대출 규모도 상당하다. 은행과 보험ㆍ증권사 등의 PF 대출은 216조5000억 원에 이른다.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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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