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모르자 구두시험으로 대체…문제도 ' 넌센스 퀴즈 '수준
물론 시험성적이 능력순 아냐 …무과 12등 이순신 나라 구해

나라가 어지러우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혼돈의 주역들 중에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 출신이거나, 많은 문과생들이 선망하는 법대 출신이 여럿이니 참 공교롭다 하겠다.
그렇게 심사가 복잡하던 터에 조선의 과거제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정리한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나라를 무너뜨리는 권력형 입시비리'란 장에서 희한한 이야기를 만났다.
어린 조카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기에게 충성을 하는 부하들에게는 무조건이라 할 정도로 너그러웠단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 사람을 과거에 장원급제를 시킬 정도였으니 그 혜택(?)을 본 이가 최적(崔適)이다.
서얼 출신인 최적은 세조가 수양대군이던 시절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는 수양대군의 명이 있다면 사람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심복이 되었다.
그런데 그 최적이 실은 까막눈이었다. 아버지가 귀화한 열진족이어서 가난했던 탓에 글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나. 활을 잘 쐈기에 무신이 되기에는 충분한 자질이었으나 글을 몰라 경전을 읽은 적이 없으니 과거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세조는 그런 최적을 불러 과거 시험에 출제될 경전을 펼쳐 놓고 아는 글자가 있는지 물었다. 이건 대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할 만했는데 불행히도 최적은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 여기서 물러날 리가! 세조는 아예 말로 문제를 묻고는 답을 듣고 평가하는 구두시험으로 시험방식을 바꿔 버렸다. 한데 책에서 인용된 『성종실록』의 관련 기록을 보면 이 구두시험마저 그 수준이 참담한 지경이다.
세조가 "싸우다가 도망치는 병사들을 처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 묻자, 최적이 "남은 병사들이 놀라 전열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 답했는데 이에 세조가 "통하였다!"하는 식이었다. 가히 넌센스 퀴즈라고도 할 만했는데 그러고도 최적은 세조 12년 1466년 무과에 장원급제했다. 이런 우격다짐으로 장원급제가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면 그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과거시험에 응했을까.
책 뒤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선조 9년(1576년) 시행된 과거에서 문과 장원은 윤기, 무과 장원은 문명신이었다. 그리고 함께 응시했던 이순신은 무과 12등이었다. 이후 역사는 우리가 아는 바다. 역사에 묻힌 윤기와 문명신과 달리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이 되어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인물이 되었다.
역시 시험성적은 능력이나 인성의 잣대가 절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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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