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피하다 넘어져 무릎 다치고 풀린 신발끈 동여 매며 달려 세계 신기록으로 골인
IOC총회 현장에 감동의 사연 전해져 신탁통치 받는 나라에 이례적으로 회원국 승인

우리나라 역사는 단군 왕검의 고조선을 시작으로 삼국시대를 거쳐 이씨 조선시대 500년 동안 크고 작은 외세 침입을 받았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36년의 통한의 역사를 갖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살신성인으로 나라를 지킨 애국자가 있는가하면 불굴의 정신으로 국제대회에서 놀랄만한 기록으로 불가능한 일을 일궈낸 영웅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오늘 소개할 영웅은 보스턴 국제 마라톤에서 당시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서윤복 선수다.
때는 1947년 4월 19일 장소는 미국의 보스턴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로 36년의 통한의 굴욕의 세월을 보내다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망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신생 독립국이 된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미국의 신탁 통치하에 있었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보스턴 국제 마라톤 감독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이었다. 코치 겸 선수로 남승룡이 나섰고 진짜 선수는 서윤복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가 미국의 신탁 통치를 받는 신생국이라 유니폼에 태극기를 달 수 없었다. 우리나라를 신탁 통치하던 미국의 주장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아야 했듯이 서윤복, 남승룡 선수는 성조기를 부착해야 출전을 허가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기정 감독은 이같은 미국측의 강경한 조치에 11년 전인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고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수가 시상대에서 바지를 명치까지 끌어올려 일장기를 가리려 했던 순간을 떠 올렸다.
이런 사연이 미국의 언론과 스포츠 팬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여곡절 끝에 서윤복, 남승룡 선수는 힘들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51회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는 미국의 독립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세계 4대 국제 마라톤 대회로 1897년부터 매년 4월 셋째주 월요일에 열린다.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던 신생 독립국가 선수로 출전한 23살의 서윤복 선수는 신장 1미터 63센티의 작은 체구로 그 당시 전문가들 누구도 관심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서윤복 선수는 중반에 들어서면서 선두로 내달려 42,195km, 105리를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을 했다.
이는 세계 육상 전문가들을 경악시킨 세계 스포츠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또한 서윤복 선수의 우승 소식을 접한 국내는 환희의 도가니였다.
사실 서윤복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까지 장애물도 적지 않았다.
서윤복 선수가 단독 선두로 나선 후 갑자기 길에 뛰쳐나온 개가 서윤복 선수를 물려고 해 이를 피하려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다쳤다.
달리는 도중에 신발끈이 풀려 고쳐 매는 어려움 속에서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스포츠계를 감동시킨 서윤복 선수의 세계제패는 1947년 6월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IOC 총회에 참석한 IOC 위원들도 감동의 찬사를 보내게 만들었다. 미국의 신탁통치하에 있었던 우리나라를 IOC 회원국으로 승인해줬다. 보스턴 마라톤 우승이 우리나라가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계기를 만든 것이다. 올림픽 출전시기를 4년 앞당겼다.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77년 만인 지난달 12일 이화여자대학 전철역 소광장에서 서윤복 선수의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또한 지하철 이대역에서 대흥역까지 1.2km 구간을 '서윤복 길'로 이름 지어졌다. 늦었지만 우리들의 스포츠 영웅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서윤복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자 백범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발로 천하를 제패)라는 휘호를 써 그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