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09:4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독서광' 스탈린의 잔혹성
[김성희의 역사갈피] '독서광' 스탈린의 잔혹성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11.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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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28년간 철권통치 … 정적 포함해 수십만 명 죽이고 수백만 명 강제수용소 보내
마르크스,엥겔스 등의 좌익 서적외 톨스토이 문학등도 탐독…2만5천권의 장서 남겨
책이 지식을 더해 줄 수 있지만 지혜의 원천이나 인성의 바탕이 되는 데는 한계 절감
이오시프 스탈린은 대단한 독서광이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책을 사랑한 독재자'라 하면 어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양립할 수 없기에 현실에선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것 말이다. 한데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 1924년부터 1952년까지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는 동안 정적을 포함해 수십만 명을 처형하고, 수백만 명을 시베리아 등의 강제수용소인 굴라크로 보낸 철권통치자다.

대입 수능시험에서 '세계사'가 빠진 바람에 요즘 젊은이들에겐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스탈린 하면 떠오르는 '숙청'의 피바람과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뒷배가 되어주었던 악연 때문에 좀처럼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조지아 태생의 스탈린은 어릴 적에 사제가 되기를 희망했다가 러시아 제정의 폭압을 보고 볼셰비키 혁명가로 변신했다는데 그래선지 대단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300~500쪽을 읽기는 예사였고, 사후에 남은 그의 장서는 2만 5천 권에 달했다니 짐작할 만하다.

그의 장서를 통해 내면세계를 읽어보려 시도한 『스탈린의 독재』(제프리 로버츠 지음, 너머북스)의 저자는 "스탈린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이해가 뛰어나고 감수성이 예민한 지식인이었다"고 규정한다. 신학교를 다닌 혁명가였던 만큼 성경과 함께 마르크스, 엥겔스 등의 좌익 서적도 스탈린의 독서에서 큰 몫을 차지했지만 이런 류의 책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들은 물론 셰익스피어, 발자크 등 서구 작가들의 소설도 탐독했다. 무엇보다 역사 특히 전쟁사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나폴레옹의 침공에 맞서 러시아를 지켜낸 미하일 쿠투조프 사령관의 경험담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는 스탈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일랜드의 역사학 교수인 지은이에 따르면, 스탈린은 자신이 이미 알거나 믿는 것을 확인하려고 책을 읽는 일은 거의 없었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 독서를 했단다. 그러면서 스탈린 말년의 일화를 전해준다. 어느 날 스탈린은 방황하는 둘째 아들 바실리에게 자신이 읽고 있는 책들을 가리키며 "내 나이가 칠십이란다. 하지만 난 지금도 계속 배우는 중이야"라고 했다니 그의 책 사랑을 알 만하다.

스탈린은 여느 독서가처럼 책을 읽으며 여백에 감상이나 궁금한 사항에 관한 메모도 남기고, 밑줄도 긋곤 했는데 이를 통해 독재자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스탈린이 남긴 러시아 교과서에 "패자의 죽음은 승자의 평안에 필수적이다"란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고 한다. 피에 미친 독재자의 신념은 이런 믿음에서 나왔던 모양이다.

스탈린 사례를 보면, 책이란 지식을 더해줄 수는 있지만 지혜의 원천이나 인성의 바탕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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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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