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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도 정복 못한 '아이티'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도 정복 못한 '아이티'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10.0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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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나폴레옹인 '투생'의 활약으로 프랑스혁명 직후인 1801년 '생도맹그 자치정부' 출범
2만 명의 프랑스 대군 '아이티'서 고전…'거짓 휴전' 제안, '투생' 사로 잡아 프랑스에 구금
아이티는 미국에 이어 서반구에서 두번째 독립국임에도 지배층 교체에 그친'미완의 건국'
투생은 불공평한 싸움 끝에 무덤 속에서 승리를 거두고 '검은 나폴레옹'이란 영예를 얻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검은 나폴레옹'을 아시는지? 노예 출신이 운영하는 독립 국가를 탄생시킨 아이티 혁명을 이끈 군인이자 독립운동가 투생 루베르튀르를 일컫는 말이다.

중미의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는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개발했으나 프랑스로 지배권이 넘어간 작은 섬으로, 사탕수수와 커피 재배가 주산업이었다. 농장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했는데 투생은 노예의 3대손이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생도맹그의 흑인들은 18세기 후반 독립운동을 벌였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읽기 쓰기가 가능했던 투생은 40대 후반에 저항 운동에 뛰어들어 지도자로 떠올랐다. 때로는 스페인, 때로는 영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투쟁했다.

혁명군을 이끌어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1798년에는 자메이카에서 파견된 영국군까지 물리쳤다. 군사 지도자로서의 투생의 면모를 보여주는 성과였으니 이를 바탕으로 1801년 생도맹그에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총독이 되었다.

앞서 1794년 프랑스 국민공회는 생도맹그의 노예제도 폐지를 결의했다. 영국이나 스페인이 침략할 경우 해방 노예들로 군대를 만들 수 있으리란 얄팍한 속셈이 작용한 조치였다. 생도맹그는 한때 유럽에서 사용되는 설탕의 40%를 공급했을 정도여서 프랑스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으니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 혁명 와중에 공화국의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2만 명의 대군을 생도밍그로 파견했다. 자신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 4만 명이 못 되는 병사를 이끌었으니 생도밍그 정복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지의 황열병에 시달려 군사적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파견군 사령관 르클레르는 투생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이에 투생은 '우리의 힘을 보여줬으니 프랑스도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협상장으로 갔다가 체포되어 프랑스로 끌려간 뒤 1803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투생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키워내 장군으로 임명한 노예 출신 장 자크 데살린이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르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1804년 생도맹그를 독립 공화국으로 선포하고 국호를 '아이티'로 정했다. 투생은 불공평한 싸움 끝에 무덤 속에서 승리를 거두고 '검은 나폴레옹'이란 영예를 얻었다.

한데 아이티 혁명(1791~1804)은 세계사에서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의 반란으로, 아이티는 미국에 이어 서반구에서 두 번째 독립국임에도 그렇다. 정치 사회제도의 전면적 개혁이 아니라 지배층의 교체로만 그친 '미완의 혁명'인 탓이 크지 싶다.

투생을 만나게 해준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마틴 푸크너 지음, 어크로스)의 저자가 아이티 혁명과 계몽주의를 연관 지으며 "투생의 성공은 전 세계 식민주의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지만 사상 자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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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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