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기 이슬람왕조 무굴제국은 종교 다양성 인정해 영토를 3배 이상 키워
기독교는 인도적이고 포용적이며 이슬람은 호전적이란 '고정관념'은 옳은 가
조르다노 브루노란 인물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6세기에 철학자, 천문학자로 활동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도미니코회 수사다.
브루노는 『무한 우주와 세계에 관하여』 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태양은 무한한 우주 중에 있는 하나의 행성이며, 수많은 행성은 각각의 '지구'를 거느리고 있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했다. 이는 당시 로마 가톨릭에서 이단시하던 지동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에선 '성경의 가르침'대로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며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천동설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8년 동안 산탄제로 성에 갇힌 채 심문을 받다가 결국 1600년 종교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아니다, 화형을 당했으니 이슬은 아니다-로 사라졌다.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던 그는 재판정에서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오히려 더 클 것이다"라고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이는 1610년 비슷한 사안으로 교황청의 심판을 받게 되자 지동설을 철회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갈릴레오는 재판 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지만 말이다. 비록 갈릴레오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브루노가 인류 문명사에 이름을 남긴 것도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그런 자세 덕분이다.
한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지음, 사이언스북스)에서 이 브루노와 나란히 거론된 인물이 있다. 인도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아크바르 1세(1542~1605)다. 무굴제국은 300여 년간 지금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포함한 인도 아대륙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이며 아크바르 1세는 그 번성기를 이룬 명군이었다. 한데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 그가 소환된 것은 종교적 관용 덕분이다.
아크바르는 기본적으로 수니파 무슬림이었지만 치세 초기를 빼놓고는 거의 모든 종교에 개방적 태도를 취했다. 시아파 무슬림은 당연하고, 힌두교의 축제를 직접 주관하는가 하면, 자이나교 성자를 궁전으로 초대해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예수회 선교사들을 초청해 황위를 이을 왕자들이 기독교 세례를 받도록 했을 정도였으니 아크바르의 종교적 관용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50년 가까운 치세 동안 무굴제국의 부와 영토를 3배 이상 키운 그의 치적은, 이처럼 다양하고 이질적인 민족, 종교, 문화를 아우르는 포용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핑커가 주목한 것은 브루노와 아크바르 1세가 동시대 인물이란 점이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면 과연 '교조적이고 호전적인 이슬람, 포용적이고 인도적인 기독교'란 우리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