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이 아끼던 말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참형위기에 내몰린 어인 (圉人) 살려내
정치 부재란 말을 듣는 요즘 '안자'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 듣는 '경공'은 있는 가

기원전 6세기에 중국에서 활약한 안자(晏子)라는 인물이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보다 100년쯤 뒤에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관중이 제 환공을 도와 패권을 잡도록 한 명재상이었다면 안자 또한 제나라의 중흥을 일군 능력 있는 정치가였다. 게다가 안자는 촌철살인의 간언으로 군주를 움직인 일화가 많으니 그의 언행을 정리한 『안자춘추』가 전해질 정도다.
중국 고전을 발췌, 소개한 『교양으로 읽어야 할 중국지식』(다케우치 미노루 외 지음, 이다미디어) 중 '안자춘추'편에는 안자의 정치술의 맛보기가 실려 있다.
안자가 모시던 제 경공(景公)이 아끼던 말이 갑자기 죽었다. 말을 돌보던 어인(圉人)의 실수임을 알게 된 경공이 어인의 사지를 잘라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안자가 처형을 말리는 대신 경공에게 질문을 했다.
"옛날 요순 임금 때 사람들의 사지를 잘라 죽일 때 어느 부분부터 잘랐는지 아시는지요?"
그러자 경공은 문득 '과인 때부터 이런 처형법을 시작하는 꼴이 되겠구나'하고 깨달았다. 이에 어인의 사지를 자르는 대신 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는데 안자가 다시 나섰다. 그대로 옥에 가두면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자가 어인을 나무라기를, "너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 번째는 관리를 소홀히 하여 말을 죽인 죄, 두 번째는 백성들이 우리 임금은 말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게 했다고 원망하게 만든 죄, 세 번째는 백성과 다른 나라 제후들이 제나라 군주는 사람보다 말을 중히 여긴다고 가벼이 여기게 만든 죄"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크게 한숨을 쉰 다음 "그만 풀어주어라.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안자는 재상이면서도 검소하고 소박해 시끄럽고 지저분한 시장가에 살았다. 이를 보다 못한 경공이 좋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안자는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경공이 "시장 가까운 곳에 사니 무엇이 비싸고 무엇이 싼지 말해 보게"라고 물었다. 끝내 안자에게 새 집을 주겠다는 의도였으리라.
그러자 안자는 "용(踊)이 비싸고 구(屨)가 쌉니다"라고 즉각 답했다. '구'는 보통사람이 신는 신발이고, '용'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당한 사람이 신은 신발이다. 제나라에 이런 형벌을 당한 사람이 많아 '용'의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었다. 그 뜻을 읽은 경공이 즉시 그 형벌을 줄였으니 안자의 말 한마디가 백성들의 두려움을 많이 덜어준 셈이었다.
한때 '넛지(nudge)'란 말이 각광을 받았다. 원래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인데 강요하지 않고 유연하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한다는 의미로 마케팅 등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비록 2,000년도 더 전 딴 나라 이야기지만 안자의 사례를 보면 요즘 우리 정치에서도 그런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안자의 '기술'보다 그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경공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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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