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0:45 (목)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2)'빅 쇼트'㊤'파생상품'의 총성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2)'빅 쇼트'㊤'파생상품'의 총성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19.09.16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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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 상황서 떼 돈 번 '괴짜 투자자'들의 노하우 스토리텔링
코미디 작가 출신 멕케이 감독의 위트와 유머로‘난해한 파생상품’거래의 이면을 파헤쳐
"월스트리트에서 각자 밥그릇 지켜라”라는 메시지 전달하지만 관객은 '저들만의 리그'실감
제목: 빅 쇼트(The Big Short, 2015)❙감독: 애덤 멕케이(Adam McKay)❙출연: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마이클 버리 역)/스티브 카렐(Steve Carell, 마크 바움 역)/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 자레드 베넷 역)/브래드 피트(Brad Pitt, 벤 리커트 역)
제목: 빅 쇼트(The Big Short, 2015)❙감독: 애덤 멕케이(Adam McKay)❙출연: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마이클 버리 역)/스티브 카렐(Steve Carell, 마크 바움 역)/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 자레드 베넷 역)/브래드 피트(Brad Pitt, 벤 리커트 역)

이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어렵다.  '20세기 세계경제사', '노동사', '인물사' 등을 쓰며 수 백 편의 영화를 지겹도록 봤지만 그중 톱클래스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 하다. 감독은, 4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장수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Saturday Night Live)'의 수석 작가 출신인 애덤 멕케이(Adam McKay). 코미디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그의 위트와 유머가 없었다면, 2시간 넘게 금융파생상품 얘기로 꽉 찬 이 영화에 중도포기자가 속출했을 것이다.

제목부터가 난해하다. '빅 쇼트(The Big Short)'다. 자막 번역자는 영어 단어 '쇼트(Short)'를 '공매도'로 번역했으니 영화 제목은 '거대한 공매도' 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미심쩍다. 틀렸다고 단언하기도 어렵지만 정확한 번역이라 하기에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 '공매도'란, '판다'는 뜻의 한자어 '매도(賣渡)' 앞에 한자 '빌 공(空)'을 붙여 '헛것' 즉 '없는 것'을 판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로 주식시장에서 사용되는데, 값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되는 주식을, 증권회사 등 기관으로부터 일정 값에 빌려 팔고 실제로 값이 떨어지면 되사서 갚는 방식이다. 영어로 흔히 '쇼트 셀링(Short Selling)'이나 '쇼트 세일(Short Sale)'이라 불리며 주식뿐 아니라 공사채 등 채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주식시장에서의 공매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실제로 주식을 빌리고 이 빌린 주식을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와 '실제로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따라서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이 '무차입 공매도'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공매도의 장점을 얘기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불만이 많다. 법적으로 기관에게만 매매가 허락되는 것도 불만이고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거기에 가끔씩 주식매매의 달인인 기관들이 감독기관 몰래 차입 없이 주식을 공매도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공매도'가 처음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2008년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 때였다. 이 '공매도'는,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 등 파생상품과 함께, 위기의 원인이자 심화 요인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공매도'와 일부 파생상품의 규제 필요성을 절감하고 법제화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법제화' 과정에서 두 가지 특성이 드러난다. ①대부분의 나라에서 '공매도'에 대한 전반적이고 구체적인 개념 규정 없이 규제 대상별로만 규정을 제시했다는 점, ②개념의 적용 범위와 관련해서는 '주식'에 한정시키거나 '금융파생상품'에까지 확장시키는 등 나라마다 인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영화 '빅 쇼트'의 한 장면. 도이치 뱅크의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이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주택저당증권)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마크 바움 투자팀에게 파산에 베팅할 것을 권한다.
영화 '빅 쇼트'의 한 장면. 도이치 뱅크의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이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주택저당증권)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마크 바움 투자팀에게 파산에 베팅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2008년 위기 때만 해도 '공매도'의 개념과 용법이 정착되지 않고 모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10년이 지났다. 이제 그 개념과 용법도 안정되지 않았을까. 투자이론이나 기법을 선도하는 세계최대 투자정보 웹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인베스토피디아는 공매도의 핵심인 '쇼트(short)' 개념을, 주식이나 채권 등 현물거래시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파생상품시장에서의 의미로 구분한다. 주식시장에서의 '쇼트' 개념은 기존과 다르지 않지만 파생상품시장에서의 의미는 다르게 본다.

파생상품은, 기본적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 기초자산이 아닌 선물이나 옵션, 스왑 등 이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그러니 어쩌면 다른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베스토피디아의 해석에 따르면, 파생상품시장에서의 '쇼트'는 '특정 자산의 가치 하락이나 붕괴를 예상해 그와 관련된 파생상품을 매도하려는(또는 매도한) 주체나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반대의 경우, 즉 '특정 자산의 가치 상승을 예상해 그와 관련된 파생상품을 매입하려는(또는 매입한) 주체나 행위'에 대해서는 '롱(long)'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게 있다. 주식시장은 '윈-윈(win-win)' 게임이 가능한 구조다. 참여자 모두가 승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있는 A와 B는 주가가 오르면 모두 '위너(winner)'다. 하지만 파생상품시장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특정 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매매하겠다고 약정하는 시장의 특성 상 원천적으로 '파는 주체(매도주체)'와 '사는 주체(매수주체)'가 있어야 매매가 형성된다. 하나가 따면 반드시 하나가 잃는 구조다. 그래서 금융파생상품시장을 가리켜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 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자리가 줄고 자산가치는 폭락했다. 뉴욕의 괴물 투자가들은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위에 돈방석에 앉는다. 이후 국내 고용 상황은 양적인 면에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용이 일부 산업에 편중되는 나타나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다. 자료=현대경제연구원(2015년 10월26일)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자리가 줄고 자산가치는 폭락했다. 뉴욕의 괴물 투자가들은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위에 돈방석에 앉는다. 이후 국내 고용 상황은 양적인 면에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용이 일부 산업에 편중되는 나타나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다. 자료=현대경제연구원(2015년 10월26일)

 

파생상품시장에서의 '쇼트'와 '롱'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때의 '매도주체(또는 행위)'와 '매수주체(또는 행위)'를 지칭할 때 쓰이는 용어다. '매도주체(또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 '매수주체(또는 행위)'는 '롱 포지션(Long Position)'이라 부른다. 그러니 파생상품시장에서 거래 참여자는 반드시 '쇼트 포지션'이나 '롱 포지션' 둘 중 하나에 서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관점이라면 '쇼트' 또는 '쇼트 포지션'이라는 용어는, 현물시장이나 파생상품시장 모두에서 사용된다 해도, 그 의미는 다소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침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미국 증권화 포럼'이 개최됐다. 포럼은, MBS의 발행 주체이자 지속적으로 매수를 권유하는 대형 투자은행이 주도한다. MBS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 금물인 것은 당연했다. 이런 상황이니 포럼에서 클라이언트 바움을 만난 베넷이 그에게 하는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We're gathering information, we're not advertising our short position! Right? We don't want to spook anybody!"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된다.

"우리는 정보 수집 중이에요, 우리가 '매도주체'란 걸 광고하러 다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우리는 누구도 (우리가 모기지 시장이 파탄날 것에 베팅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라는 걸 원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영화 자막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공매도한 사실을 광고해선 안 돼요"라고 돼 있다. 'Short Position'을 단순히 '공매도'로 번역한 것이다. 이를 오역(誤譯)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혼선을 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관객은 바움이 주식시장에서, 차입이든 무차입이든, 주식을 공매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술적 개념의 '외연(外延)'은 학자마다 다를 수 있다. 파생상품시장에서도 모든 참여자가 주식 등 기초자산을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많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파생상품시장에서의 '쇼트' 개념은 '차입'이든 '무차입'이든 주식시장에서 사용되는 '쇼트'의 개념과 다르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에 대한 혼선은 애써 피해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빅 쇼트>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어렵다. 무엇보다 DNA 자체가 어렵고 혼란스럽고 거기에 진화를 멈추지 않는 파생상품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를 한꺼번에 다룬다. 말만 들어도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쇼트'나 '롱'이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짧다' '길다'라는 형용사일 뿐이다. 그러나 파생상품 전문가들에게 이 단어는 동사나 명사로도 쓰인다. 관객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여기에 ABS, MBS, CDO, CMO, CDS 등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것도 주연으로.

이처럼 영화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 장애물이 뭐가 됐던 핵심에는 '용어'가 있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용어가. 영화 속 해설자인 베넷은 이렇게 말한다.

"월가는 혼란스러운 용어를 즐겨 쓰지요. 이로써 그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만이 그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요(Wall-street loves to use confusing terms, to make you think only they can do what they do)."

그의 말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월가의 금융인들은 어려운 용어로 당신을 속여 당신의 밥통을 깨고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려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어려운 용어'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철밥통'을 깨고 당신의 밥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속지 않고 사기 당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시대다. <다음주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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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식민과 제국의 길』,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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