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20:10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김일성에 반기든 '종파사건'
[김성희의 역사갈피] 김일성에 반기든 '종파사건'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8.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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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북한 지도부 내부서 일어난 권력투쟁…처음이자 마지막인 '민주화' 몸부림
명목상 '국가원수'였던 연안파 리더 김두봉 몰락…농촌으로 쫓겨나 갖은 수모 당해
꼭 68년 전 이 땅에서 '8월 종파사건'이란 게 벌어졌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꼭 68년 전 이 땅에서 '8월 종파사건'이란 게 벌어졌다. 아, 물론 사건 명칭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북한의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사건은 북한 지도부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이자, 최초이자 마지막인 민주화 몸부림이지만 한국사에 밝은 이들도 제대로 모르는 잊힌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안파와 소련계 한인 중심의 비판세력이 패퇴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김일성 일가의 유일 체제가 확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니 한반도 역사에서 큰 변곡점으로 꼽힐 만한 '대사건'이다.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김재웅 지음, 푸른역사)은 비판세력에 가담했다가 망명한 주소 북한대사 이상조가 남긴 자료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꼼꼼하면서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당시 국제 정세, 북한 내부 정치 상황 등 큰 흐름을 짚으면서도 사건 주역들의 심리, 대사, 행동거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어 어지간한 장르 소설 뺨칠 정도다.

한데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김일성 비판세력에 가담했던 김두봉의 말로다. 당시 명목상의 국가원수라 할 수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연안파의 지도적 인사였다. 그러기에 경제난 탈출, 김일성 개인숭배 비판, 집단지도체제 확립을 요구하는 비판세력의 저항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서도 느슨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56년 8월 30일 내각 회의실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가해진 김일성 비판이 좌절되면서 비판세력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윤공흠 등 주역은 황급히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했는데 김두봉 역시 숙청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각종 집회와 당 회의에서 수차에 걸친 자아비판을 해야 했던 그는 병석에 있던 12월에는 들것에 실린 채로 평양의 군중 앞에서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반당 종파분자"로 전락한 김두봉은 1958년 9월 평안남도 맹산군의 한 농장으로 쫓겨났다. 호미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노쇠한 그의 농장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를 한층 괴롭게 한 것은 날조된 추문이었다. 젊은 아내와 살고 있다는 점, 전통사상과 한학에 조예가 깊다는 점마저 공격거리가 됐다.

젊은 아내와 향락에 빠져, 강원도 고성군 당위원장에게 해금강 물개에게서 정력제인 해구신을 구해 보내 달라고 했다거나 개성의 황진이 묘소를 참배하며 "세상에서 제일가는 여걸"이란 "반혁명적 언사"를 내뱉었다는 날조된 이야기가 돌았다. 심지어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가 이끈 비밀결사의 단원이었다든가 농장에서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뇌물로 돈과 양복을 건넸다는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권력투쟁에서 패한 김두봉의 말년은 "명예와 재산을 다 잃은 칠십 고령의 노인" 바로 그것이었다. 목숨이라도 부지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의 사례는, 민주국가의 '선거'마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진흙탕 싸움이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권력투쟁에서의 승자는 거의 모든 것을 누리고, 패자는 그 반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산 증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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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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