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01:00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한때 나라를 구했던 '담배'
[김성희의 역사갈피]한때 나라를 구했던 '담배'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5.1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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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사는 청나라 사람들이 담배 좋아해서 조선의 담배와 만주의 은 교환하는 무역성행
병자호란 때 끌려간 10만 명에 가까운 조선인들의 몸값으로 담배를 주고 다시 데려오기도
청나라 태종은 전국에 금연령을 내리는 한편 조선에 대해서는 담배의 수출 금지를 요구해
만주국 사람들이 담배를 아주 좋아해서 한동안 조선의 담배와 만주국의 은을 교환하는 무역이 성행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요즘 담배는 그야말로 액물이다. 한때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을 넘어 소화를 돕는다는 둥 '약효'가 있다 해서 나름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는 영 다르다. 소수파가 된 애연가들이 미미한 저항을 하지만 흡연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니 담배는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띤 물건이랄 수밖에 없다.

한데 그런 담배가 우리 역사에서 구국의 상품 구실을 한 적이 있단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사학자로 활약한 호암 문일평이란 분이 있다. 그가 쓴 글 중에서 역사에 관한 뒷이야기와 고사(故事)에 관한 것들을 모아 엮은 『사외이문(史外異聞)』(신구문화사)이란 책에 실린 이야기다.

담배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광해군 초년이라고 한다. 담배는 짧은 시간에 인기를 모았으니 『인조실록』에는 '지종채상교역(至種採相交易)'이란 표현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이 담배를 재배할 뿐 아니라 국제무역의 상품으로도 등장했다는 뜻이다.

당시 만주국 사람들이 담배를 아주 좋아해서 한동안 조선의 담배와 만주국의 은을 교환하는 무역이 성행했는데 이것이 병자호란 이후 뜻밖의 구실을 했다. 병자호란 때 10만 명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조선 왕조는 이들의 몸값을 주고 데려오기도 했으니, 이른바 '환향녀(還鄕女)'의 비극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조선 조정은 이들을 속환(贖還)하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부모형제, 처자를 잃은 이들 중에는 조정의 교섭을 기다리지 않고 몸소 가서 몸값을 주고 조선인 포로를 되사오기도 했다. 이를 일러 사속(私贖)이란 표현까지 나왔으니 이런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많으면 수만 냥 적으면 수천 냥에 달하는 몸값 지불이었다. 이를 위해 은 외에도 면포(綿布), 지속(紙束)-당시 한지는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았다-이 통화로 사용됐는데 여기에 뜻밖에도 담배가 등장한다.

조선인 입장에선 담배로 몸값을 주니 이익이고, 만주인들로선 좋아하는 담배를 구할 수 있어 환영했기에 이런 '거래'가 꽤나 성행했다. 전쟁 포로로 타국에 끌려간 조선인들을 데려오는 데 담배가 나름 기여했던 셈이다. 그런데 여기 더해 조선 잠상(潛商)들의 밀수를 통해 청나라의 은이 유출되고 흡연으로 인한 실화(失火)가 곧잘 발생하자 담배가 청나라의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청나라 태종은 숭덕 3년에 전국에 금연령을 내리는 한편 조선에 대해서는 담배 수출 금지를 요구했다. 이것이 인조 16년, 병자호란 2년 후 일이니 담배 밀무역의 호황 덕분에 조선에서는 잠시일망정 은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가격이 폭락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으니 청 태종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담배 밀무역은 성행했으며 종내에는 담배 종자가 만주에 전해져 만주어에서 담배를 '담바'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한다.

담배가 한때는 국제무역의 총아였고, 이익을 쫓는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장애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史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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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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