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하반기에 현재의 오너 3세 형제 공동경영 체제를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 바꾸기로 해 사실상 형제간 계열 분리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효성그룹 지주회사인 ㈜효성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고 효성첨단소재,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효성홀딩스USA, 효성토요타, 비나물류법인(베트남), 광주일보 등 6개사를 인적분할해 또 다른 지주회사인 '효성신설지주'(가칭)를 신설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분할안이 승인되면 7월 1일 자로 효성그룹은 존속 지주회사인 ㈜효성과 신설 지주회사인 ㈜효성신설지주라는 2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된다.
존속 지주회사인 ㈜효성은 효성그룹 장남 조현준(56) 회장이, 신설 지주회사인 ㈜효성신설지주는 효성그룹 삼남 조현상(53) 부회장이 각각 나눠 맡는 '한 지붕 두 살림' 체제다.
지주회사 분할 비율은 순 자산 기준 ㈜효성 0.82 대 ㈜효성신설지주 0.18로 돼 있다. 존속 지주회사 산하 기업의 연 매출은 약 19조 원, 신설 지주회사 산하 기업의 연 매출은 7조 원대로 각각 추산된다.
효성그룹 측은 이번 조치와 관련 "지주회사별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신속한 의사 결정 체계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효성그룹 3세 형제가 이처럼 '한 지붕 두 살림'을 차리기로 한 것은 향후 지금의 '한 지붕 공동 살림'을 마무리 짓고 각자가 따로 나가 살기 위한 '계열 분리 사전 작업'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미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섬유와 산업 자재 부문을 각각 맡아 사실상 독립적으로 사업을 이끌어왔다.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의 ㈜효성 지분율은 각각 21.94%, 21.42%로 엇비슷하다.
재계는 또 이들 두 형제가 미래에 불거질지 모르는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미리 없애기 위해 이번에 각자의 사업영역을 확실하게 나누려 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효성은 10여 년 전 '형제의 난'을 겪으며 내홍에 시달린 바 있다. 2014년 조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장남인 당시 조현준 효성 사장과 주요 임직원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이후 조 전 부사장이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경영에서 손을 떼긴 했지만 이로 인해 형제간 갈등이 깊어졌고 그룹에도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 "효성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또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그래서 남게 됐고 그것이 이번 결정의 촉매제가 됐다는 풀이도 있다.
향후 2세 조석래 명예회장이 자신의 잔여 지분을 자식들에게 어떻게 넘길 것인지, 그룹을 떠난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주회사 분할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2018년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시동이 걸렸던 효성 오너 3세 형제 공동경영 체제는 하반기에 분할안이 채택될 경우 6년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국내 굴지의 화학 섬유 기업군으로 성장한 효성 계열사는 크게 섬유·무역, 중공업·건설, 산업 자재, 화학, 정보통신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조 회장은 섬유PG(Performance Group)장, 무역PG장, 정보통신PG장을 지냈고, 조 부회장은 화학PG CMO(최고마케팅책임자)와 산업자재 PG장을 역임했다.
분할 후 장남 조 회장이 맡게 될 존속 지주회사 ㈜효성은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의 혁신과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조 회장은 2017년 회장 취임 후 세계 1위 제품인 스판덱스 사업을 확대하고 친환경 섬유 사업에서도 성과를 낸 바 있다.
삼남 조 부회장이 맡게 될 신설 지주회사 ㈜효성신설지주는 효성첨단소재를 주축으로 글로벌 소재 전문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효성첨단소재는 타이어코드, 수소 에너지용 탄소섬유, 방산 소재 아라미드 등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의 고기술 제품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
효성의 대표적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꼽혀온 '수소 사업'은 장남 조현준 회장이, '탄소섬유 사업'은 삼남 조현상 부회장이 맡는 것으로 구획정리 될 전망이다.
효성은 2023년 공정거래위 발표 기준 54개 계열사, 자산 총액 15조8,770억 원, 국내 재계 순위 31위인 중견 그룹 기업이다. 창업주 고(故) 조홍제 회장이 1966년 설립한 이래 57년 동안 2세 조석래(89) 회장 체제(1982년~)를 거쳐 2017년 3세 조현준 회장 체제로 넘어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