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득표는 388만여 표에 그쳐 … 당원 2만명인 호남 어느 지역선 13표 얻어

총선에서 자신감을 얻은 정주영 회장의 다음 단계는 당연히 대선이었다.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여당인 민정당 김영삼, 야당인 민주당 김대중과 3파전이었다.
통일국민당에 입당하는 당원이 급증했다.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역별로 당원 확보에 나섰다. 당원만 1,000만 명에 육박했다. 전체 유권자가 2,600만 명 정도였으니 충분히 당선된다고 생각했다. 지역별로 시시각각 올라오는 보고도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총선 때는 열심히 뛰었던 현대 임직원들이 대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 대선은 혈연, 지연, 학연, 인맥 등이 모두 작용한다. 현대 직원, 국민당 당원이라는 이유가 정주영 표로 직결되지 않았다.
정주영 후보가 실제로 얻은 표는 388만여 표(16.31%)에 그쳤다. 김영삼(41.96%)과 김대중(33.82%)에게 크게 뒤진 3위였다.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던 정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보고받았던 계산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당원만 2만 명이었던 호남 어느 지역은 개표 결과 정주영 후보를 찍은 표가 달랑 13표였다. 국민당과 현대 관계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혹시 표가 섞이지 않았나 뒤져볼 정도였다. 당원들에게는 활동비 명목으로 일당도 지급했었다. 선거 기간에 이 지역에만 수십 억원의 일당이 나갔는데 거의 모든 당원이 정주영의 돈 만 받아먹고 김대중을 찍은 것이었다.
호남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충남 서산도 비슷했다. 서산 간척지 사업과 서산 농장 등 정 회장의 연고지라 할 만했다. 지역구에서는 10만 표를 자신했다. 결과는 2,300표였다. 현대의 텃밭인 울산마저도 정주영을 외면했다. 정몽준 의원의 지역구인 동구에서만 정주영이 1위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2위였고, 심지어 3위인 곳도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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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