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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친필사인 들어있는 새 돈에 숨어 있는 정치학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친필사인 들어있는 새 돈에 숨어 있는 정치학
  • 김승희 이코노텔링기자
  • lukatree@daum.net
  • 승인 2018.10.1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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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신권화폐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신권화폐

한국은행의 화폐 박물관에는 눈에 띄는 ‘새 돈’이 전시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사인이 각각 들어있는 신권이다. 2005∼2009년까지 4년간 선을 보인 1천원,5천원,1만원,5만원권 등 모두 네 종류의 실제 신권 앞면 위에 대통령의 친필 사인<사진>이 쓰여있다.

이처럼 새 돈이 나오면 가장 먼저 대통령에게 보이고 또 그들의 사인을 받는 관례가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돈을 찍을 권한이 있을까. ‘결론은 없다’다. 화폐 발행 권한은 전적으로 한국은행이 갖고 있다. 즉 한국은행 총재가 돈을 찍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최종 결재권자이다. 경제 상황과 화폐유통량 등을 면밀하게 따져본 후 결정한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 조선 시대에 돈을 만들고 유통시키고자 가장 애를 썼던 임금은 바로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은 고려시대 사용했던 종이 화폐인 저화(楮貨)를 새로 발행해 사대부 등이 사용토록 하고 평민들이 쓰는 돈은 별도로 동전을 발행해 해결할 생각을 했다.

즉 닥나무 재질로 만든 저화는 요즘으로 말하면 나라가 만든 ‘수표’이다. 큰 거래때나 글자를 아는 사대부 등이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처음 저화를 발행할 때는 보통수준의 품질을 지닌 상포(베) 네 필과 맞바꿔 줬으나 ‘종이 돈’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명목 가치가 떨어지자 잘 통용이 되지 않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구한말엔 저화 형태를 띤 어음이 널리 통용됐는데 이는 상인들이 자신의 신용을 걸어 발행한 것이다. 상인끼리는 현금처럼 통용됐다. 이를 보고 당시 조선에 머물던 선교사들은 조선에는 ‘환’(換)이 많다며 놀랐다. 즉 수표(check)로 보았던 것이다.

여하간 태종은 돈을 찍을 권한 즉 화권(貨權)을 왕권 강화의 한 축으로 활용하려 했다. 신권(신하의 권한)을 앞세워 조선을 통치하려했던 정도전의 세력을 척살하고 심지어 배 다른 형제까지 죽이며 왕위에 오른 태종의 신념은 확고했다.

왕권이 시들해지면 신하들이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고 믿고 또 다른 통치 수단으로 돈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즉 돈을 발행해 쌀 같은 현물을 국고에 쌓아두면 국가와 왕실 재정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경제운영에 대한 국가통제권을 공공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말년에는 동전을 찍어 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셋째 아들 세종 때에 이르러서 동전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인 상평통보(常平通寶)다. 누구나 고르게 널리 사용할수 있다는 뜻을 지닌 동전이다.

북한이 정권 수립이후 발행한 북한 지폐.
북한이 정권 수립이후 발행한 북한 지폐.

돈을 찍을 권한은 동서고금을 떠나 막강한 만큼 통치권자들은 그 권한에 미련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는 관련 거시정책 담당기관과 잘 협의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금리 인하라는 통화정책의 방향은 물론 그 시기까지 관여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져 여론의 후폭풍에 시달렸다. 독립된 헌법기관 한국은행의 권한을 넘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영선 의원은 “시중에 600조원의 유동자금이 풀리고, 이 돈이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금리 인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을 압박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금리를 내리면 사람들은 돈을 보다 쉽게 빌릴 수 있어 돈을 찍어내는 효과를 낼 수 있고 금리를 올리면 돈을 구하기가 어려워 그만큼 시중에 돈이 덜 풀리는 것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이나 인하 권한은 돈을 찍는 권한과 비슷한 것이다.

이달 10일 한국은행에 열린 수요 화폐강좌에서 박평식 서울대교수(역사학)은 “임금(君)과 신하(臣)의 권한이 서로 적절히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나라가 불안정해진다”며 “태종이 돈을 찍을 권한(화권)에 매달리고 요즘도 통치권자들이 한국은행의 통화조절 권한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발권 권한과 권력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 화폐박물관은 북한이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발행한 돈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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