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자 분량 기사서 男 상속자 중심의 한국 재계서 이례적인 '며느리 신화'로
미국 유력 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00억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라면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며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을 집중 조명했다. 김정수부회장은 남성 상속자 중심의 한국 재계에서 이례적인 며느리 성공 신화로 통한다.
삼양라운드스퀘어와 WSJ에 따르면 WSJ은 6일(현지 시간) 김정수 부회장이 주도한 불닭볶음면의 탄생 비화와 김 부회장의 이력을 소개하는 약 9000자 분량의 기사를 실었다. WSJ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미국 코스트코와 월마트, 앨버슨 등 대형 마트에 진출한 데 이어 크로거의 판매대에도 곧 올라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불닭볶음면의 미국 진출은 소비자들이 조리가 쉽고 저렴한 음식을 찾으면서 라면 시장이 세계적으로 급성장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세계 라면 시장은 5년 전 대비 52% 증가해 지난해 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불닭볶음면은 라면계의 원조 격인 일본 마루짱과 닛신보다 모험적인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가격도 다른 제품보다 3배 정도 비싸다. 일반 불닭볶음면의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지수는 4404로, 타바스코소스보다 두 배 맵다.
월마트는 불닭볶음면이 프리미엄 라면 중 판매량 우수 제품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코스트코는 "핑크, 퍼블, 라임그린 등 화사한 포장이 매력 포인트"라며 "서부 해안 일부 지점에서 판매를 시작해 올해 안에 미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가 19% 오르는 동안 삼양식품 주가는 70% 상승했다. 삼양 제품을 포함한 한국의 라면 수출은 올해 사상 최대를 경신할 전망이다.
불닭볶음면의 성공은 김정수 부회장이 주도했다. 매운 맛이 강한 라면의 아이디어는 김 부회장이 고교생 딸과 함께 주말에 서울 도심을 산책한 201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극적인 맛으로 유명한 어느 볶음밥 집 앞에 긴 줄이 서 있는 것을 목격한 모녀는 음식점 안에 들어가 자신들 입맛으론 받아들이기 힘든 매운 맛인데도 손님들이 그릇을 깨끗이 비운 것을 확인했다. 매운 맛의 라면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김 부회장은 근처 슈퍼마켓으로 향해 비치된 모든 매운 소스와 조미료를 3개씩 구입해 각각 연구소와 마케팅팀으로 보내고, 나머지 하나는 집으로 들고 왔다.
최적의 매운 맛을 찾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식품개발팀은 개발에 닭 1200마리와 소스 2t을 투입했다. 전 세계 고추를 연구하고 한국 내 매운 맛집을 찾아갔다. 김 부회장은 "시제품을 처음 맛볼 때 매워서 거의 먹지 못했지만, 맛보다 보니 갈수록 맛있고 익숙해졌다"고 털어놨다.
2012년 제품을 내놓자 유튜버들이 먹방에 나서며 입소문을 탔다. K팝 스타 BTS와 블랙핑크가 소개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전 명예회장의 며느리다. 삼양식품이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자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해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을 돕기 시작했다. 회사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보다 저렴한 대파와 팜유를 찾기 위해 중국 말레이시아 등지를 섭렵했다.
김 부회장은 기업 경영 경험은 없었지만, 시아버지 전중윤 명예회장과 사업 방향을 놓고 자주 대화했다. 경영을 안정화시킨 뒤 2006년 구성된 신제품 위원회를 주도해 불닭볶음면 성공 신화를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