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2:1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선량한 관리 '순리'(循吏)
[김성희의 역사갈피] 선량한 관리 '순리'(循吏)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1.0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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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하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해 백성 위할 줄 아는 지도자 표상
자기가 짠 베가 더 좋고 , 가계에 도움 된다는 부인의 베틀 없애
봉록을 받는 관리들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 처신을 해야
공의휴는 봉록을 받는 관리들이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못하게 하고 큰 이익을 얻은 자는 재차 작은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얼마전 전문 학자도 아닌 회사원이 각종 관련서를 섭렵해 사마천의 『사기 열전』 '완결판'(글항아리)을 냈다 해서 작은 화제가 되었다. 마침 내가 가진 책은 30년도 더 전에 나온 것이어서 흔쾌히 구입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뒤적이다가 그중 「순리열전循吏列傳」에 눈이 갔다. 순리란 '청렴하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선량한 관리를 가리킨다. 이제는 거의 요식행위로 전락한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때마다 이 나라 지도층의 민낯을 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다.

「순리열전」에는 한나라 이전 춘추시대 관리 중 불과 5명만 다루고 있다. 아마 그때도 '순리'는 그만큼 희귀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공의휴(公儀休)란 인물이 나온다. 노나라의 박사였는데 뛰어난 재능과 우수한 학문으로 재상이 되었는데 책에는 그와 관련해 '노상기어魯相嗜魚' '발규거직拔葵去織'이라 해서 세 가지 에피소드가 실렸다.

먼저 말 그대로는 노나라 재상은 생선을 좋아한다는 뜻의 '노상기어' 이야기다. 공의휴는 생선을 즐겨 먹었는데 이를 보고 어떤 빈객이 그에게 생선을 선물로 보냈다. 한데 공의휴는 이를 거절하니 어떤 이가 그 이유를 물었다. 공의휴가 답하기를,

"작은 뇌물이라도 받으면 보낸 사람의 작은 편의라도 봐주려 법을 굽히고, 어기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재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면 누가 생선을 갖다 주지도 않겠지만 나 또한 스스로 생선을 사 먹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 겁니다. 그러니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생선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단다.

'발규거직'은 아욱을 뽑고 베틀을 없애버린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화를 묶은 사자성어이다. 공의휴가 어느 날 집에서 아욱국을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 "가을 아욱은 문 닫아 걸고 먹는다"는, 중국에선 '채소의 왕'이라 불리는 그 아욱으로 어지간히 맛있었던 모양이다. 집안사람에게 아욱이 어디서 났는지 물으니 집안의 밭에서 키운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텃밭의 아욱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발규(拔葵)다.

또 하루는 집에 돌아온 공의휴가 부인이 베틀에 앉아 직접 베를 짜고 있는 걸 보았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짠 베가 더 좋고, 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라 했다. 공의휴는 즉시 아내를 내보내고 베틀을 불태워 버렸다. 바로 거직(去織)이다.

봉록을 받는 관리들이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못하게 하고 큰 이익을 얻은 자는 재차 작은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한 공의휴로선 당연한 조치였다. 자기가 가진 고급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투기 등 거리낌 없이 사익을 취하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온갖 편법을 자행하는 등 여러 역대 장관 후보들에 실망했기에 공의휴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2,000년도 더 전의, 먼 나라 이야기로 읽힌다. 그래도 부럽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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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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