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짠 베가 더 좋고 , 가계에 도움 된다는 부인의 베틀 없애
봉록을 받는 관리들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 처신을 해야
얼마전 전문 학자도 아닌 회사원이 각종 관련서를 섭렵해 사마천의 『사기 열전』 '완결판'(글항아리)을 냈다 해서 작은 화제가 되었다. 마침 내가 가진 책은 30년도 더 전에 나온 것이어서 흔쾌히 구입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뒤적이다가 그중 「순리열전循吏列傳」에 눈이 갔다. 순리란 '청렴하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선량한 관리를 가리킨다. 이제는 거의 요식행위로 전락한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때마다 이 나라 지도층의 민낯을 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다.
「순리열전」에는 한나라 이전 춘추시대 관리 중 불과 5명만 다루고 있다. 아마 그때도 '순리'는 그만큼 희귀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공의휴(公儀休)란 인물이 나온다. 노나라의 박사였는데 뛰어난 재능과 우수한 학문으로 재상이 되었는데 책에는 그와 관련해 '노상기어魯相嗜魚' '발규거직拔葵去織'이라 해서 세 가지 에피소드가 실렸다.
먼저 말 그대로는 노나라 재상은 생선을 좋아한다는 뜻의 '노상기어' 이야기다. 공의휴는 생선을 즐겨 먹었는데 이를 보고 어떤 빈객이 그에게 생선을 선물로 보냈다. 한데 공의휴는 이를 거절하니 어떤 이가 그 이유를 물었다. 공의휴가 답하기를,
"작은 뇌물이라도 받으면 보낸 사람의 작은 편의라도 봐주려 법을 굽히고, 어기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재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면 누가 생선을 갖다 주지도 않겠지만 나 또한 스스로 생선을 사 먹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 겁니다. 그러니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생선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단다.
'발규거직'은 아욱을 뽑고 베틀을 없애버린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화를 묶은 사자성어이다. 공의휴가 어느 날 집에서 아욱국을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 "가을 아욱은 문 닫아 걸고 먹는다"는, 중국에선 '채소의 왕'이라 불리는 그 아욱으로 어지간히 맛있었던 모양이다. 집안사람에게 아욱이 어디서 났는지 물으니 집안의 밭에서 키운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텃밭의 아욱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발규(拔葵)다.
또 하루는 집에 돌아온 공의휴가 부인이 베틀에 앉아 직접 베를 짜고 있는 걸 보았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짠 베가 더 좋고, 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라 했다. 공의휴는 즉시 아내를 내보내고 베틀을 불태워 버렸다. 바로 거직(去織)이다.
봉록을 받는 관리들이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못하게 하고 큰 이익을 얻은 자는 재차 작은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한 공의휴로선 당연한 조치였다. 자기가 가진 고급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투기 등 거리낌 없이 사익을 취하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온갖 편법을 자행하는 등 여러 역대 장관 후보들에 실망했기에 공의휴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2,000년도 더 전의, 먼 나라 이야기로 읽힌다. 그래도 부럽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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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