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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리투아니아의 군사훈련장
[김성희의 역사갈피]리투아니아의 군사훈련장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2.26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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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라제라는 인구 5000명 도시에 서울 4분의 1 크기의 규모로 건설
강대국 둘러싸인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나토의 확고한 안보약속 갈구
리투아니아가 짓고, 소련군이 쓰다가 미군이 훈련하던 곳에 독일진주
리투아니아는 파브라제를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 외국군을 위한 군사기지와 훈련시설을 만들어 전 국토의 1.2퍼센트를 군사훈련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파브라제라는 도시를 들어봤는지? 2001년 현재 인구 5,000명이 채 안 되는 곳이니 실은 도시라고 하기에도 뭐한 곳이다.

한데 이곳에 125평방킬로미터, 서울 면적 4분의 1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사훈련시설이 있다. 그것도 190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건 『전쟁과 학살을 넘어』(구정은·오애리 지음, 인물과사상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계 분쟁사를 정리한 책인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이 지난 7월 리투아니아에 상설 군사기지를 만든다는 대목에서 파브라제가 등장한다. 맞다. 파브라제는 리투아니아의 소도시다.

흔히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더불어 '발트 3국'이라 불리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동유럽의 소국들이 그렇듯 곡절이 많다. 중세에는 리투아니아 공국이 들어섰지만 러시아 제국에 병합됐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점령됐다. 1918년에 독립공화국이 됐으나 내부의 공산주의자들, 폴란드 등과 세 번이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국 정부는 1940년 파브라제에 공산주의자를 가둬두는 강제노동수용소를 만들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하면서 유대인 학살장이 됐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0년 3월, 소련이 공식 해체되기도 전에 맨 처음 갈라져 나와 독립했다. 2004년 나토에 가입했지만 러사이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친러시아인 벨라루스 사이에 있어 늘상 안보 위협을 느끼는 처지다.

이 같은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리투아니아는 나토의 확고한 안보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다각도로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를 빼앗아간 뒤 더욱 불안을 느껴 서방 군사력 '유치'하기 위해 기지 제공, 주둔비 지원 등 갖은 애를 쓰고 있다.

2014년부터 미군 약 200명이 파브라제에 교대로 주둔하며 훈련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에이브럼스 탱크를 동원한 군사훈련이 실시됐고, 2021년엔 일단의 군부대가 9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했지만 '발트해 지역 최초의 미국 PX'가 설치되는 등 사실상 장기 주둔 태세에 들어갔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영구적인 미군기지 유치를 위해 사전작업으로 컨테이너 주택과 체육관 등 편의시설을 갖춘 훈련캠프를 만드는데 700만 유로를 쏟아부었다. 리투아니아는 파브라제를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 외국군을 위한 군사기지와 훈련시설을 만들어 전 국토의 1.2퍼센트를 군사훈련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란다. 독일의 상설 군사기지 구상 또한 그 일환인데 정작 러시아의 코앞에 미군이 영구 주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어쨌든 리투아니아가 짓고, 소련군이 쓰다가 미군이 훈련하던 파브라제의 군사시설에 독일군이 들어가는 모양새다. 강대국의 틈새에 끼인 리투아니아의 기구한 처지가 어째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이는 건 나 혼자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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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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