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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고려의 세종…'名君' 예종
[김성희의 역사갈피] 고려의 세종…'名君' 예종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2.1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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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고 학문이 뛰어나 송나라에까지 유명세…신하들에게 "간언을 아끼지 말라" 당부
윤관을 시켜 여진족을 무찌르고 동북 9성을 개척…국립대학격인 국자감서 무관 양성
백성의 치료 담당하는 혜민국 만들고 '도이장가'란 향가 지을 정도로 예술적 소양 갖춰
예종은 신하들에게 자신이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간언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어지간한 이들은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란 이름을 들어보았을 터다. 고려의 풍광과 습속을 그린 듯이 묘사해 고려사 연구나 우리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니 고교 시절 국사나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들었을 테지만 실제 이 책을 모두 읽어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고려도경』의 체제를 새로 구성하고 미려한 현대어로 옮겨 독자들의 흥미와 편의를 돋운 책이 선보였다. 『1123년 코리아 리포트, 서긍의 고려도경』(문경호 지음, 푸른역사)가 그것인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이 수두룩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0년 전 고려를 방문한 이방인의 여행기를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이를테면 당시 귀부인들은 몽수(蒙首)라는, 길이가 약 160센티미터에 달해 정수리에서 땅바닥까지 늘어지는 얼굴가리개를 썼단다. 얼굴과 눈만 내놓고 모든 것을 가렸다니 요즘으로 치면 이슬람 여성들이 쓴다는 히잡의 고려판이라 하겠다. 수도인 개경에는 십자가(十字街)라 불리는 대로가 있었다든가, 화폐 대신 추포라는 거친 베를 써서 거래했으며 대시사란 관청에선 저울 눈금을 속이는 상인을 단속하는 업무도 보았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끈 것은 서긍이 전대 임금인 예종-서긍은 인종 시절 이 땅에 왔다-이 지었다는 '벌곡조(伐谷鳥·고려말로 뻐꾸기)'란 노래를 이야기 한 대목이다. 서긍에 따르면 어질고 학문이 뛰어났다 해서 송나라에까지 알려진 예종은 신하들에게 자신이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간언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정작 신하들은 몸을 사리고 말을 아꼈다는 것이다. 이에 예종은 신하들이 계속 자기 잘못을 비판해도 아름다운 뻐꾸기의 지저귐을 듣듯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담은 노래였다고 한다.

아니 이런 열린 군주가 있나 싶어 자료를 뒤져보니 고려 16대 임금 예종은 우리 역사에서 조선조 세종에 버금가는 명군이었다. 윤관을 시켜 여진족을 무찌르고 동북 9성을 개척하고, 요즘의 국립대학이라 할 국자감의 7재 중 무관을 양성하는 강예재를 개설하고 고려조에서 유일하게 과거시험 중 무과(武科)를 실시했다. 그런가 하면 백성의 치료를 담당하는 혜민국(惠民局)을 만드는 등 민생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도이장가(悼二將歌)」란 향가를 남길 정도로 예술적 소양도 뛰어났다.

그러기에 제8대 임금 현종에서 예종에 이르기까지를 고려의 최전성기라 꼽는 모양이다. 요즘 고려 현종 대 이야기를 다룬 TV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라는데 내친 김에 예종 이야기도 드라마화 해줬으면 좋겠다. 서긍은 '송나라 조정에 뻐꾸기 같은 신하가 얼마나 있는가'하고 묻지만 도대체 21세기 서울의 지도자들에게 뻐꾸기 같은 참모가 과연 몇이나 있겠나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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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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