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국민당을 창당하자마자 31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곧바로 대통령 선거 도전
의식주 중 집은 국가가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 가격 대폭 낮춘 아파트 공급 내세워

정주영의 생애를 크게 나누면 경제인 정주영, 체육인 정주영, 정치인 정주영이다.
정치인 정주영을 얘기할 때 겹치는 단어는 통일국민당과 대통령 선거다. 정주영은 1992년 14대 총선과 14대 대선에서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정치인 정주영의 활동 기간은 불과 2년도 되지 않았다. 그의 86년 생애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다. 어쩌면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임팩트는 너무나 강해서 그의 일생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정주영은 정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깜장 고무신'하나 신고 고향을 떠나와서 몸으로, 머리로 오직 돈을 버는 것에만 매진했던 사람이다.
그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계기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현대양행을 뺏길 때였다. 정주영은 이때 정치에 휩쓸리는 기업의 처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당시 그의 나이 65세. 그때도 늦은 나이였는데 실제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때는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77세 때였다.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자마자 치른 총선에서 자신을 포함한 31명의 국회의원을 탄생시키고, 곧바로 대통령에 도전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일은 다 알고 있지만, 그가 내세웠던 공약은 지금 봐도 획기적인 약속이었다. 경제인 출신 정치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이 '반값 아파트'다. 정주영이 대통령을 하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국민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국민이 미국, 영국 국민 못지않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
정 회장은 '국가는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라는 확고한 의식이 있었다. 의(衣)와 식(食)은 각자가 해결할 수 있으니 집은 국가가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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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