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선수는 어정쩡한 신분으로 포철서 뛰다가 어렵싸리 대우에 둥지 텄지만 이렇다할 활약 못해

정세영 회장은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라며 우리를 롯데호텔 일식집으로 안내했다. 결국 취재는 하지 못하고, 밥만 얻어먹고 왔다.
현대축구단 해체 선언 파문은 거의 두 달 가까이 진행됐다. 정세영 회장의 반응으로 미루어 정말 축구단을 해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정주영 회장의 몫이었다. "화가 난다고 판을 깨면 안 돼. 해를 넘기지 마라"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현대축구단은 그해 12월 31일 복귀를 선언했다. 스카우트 파문의 당사자인 김종부는 어찌 됐을까.
김종부는 현대와 대우의 '공동 임대'라는 어정쩡한 형식으로 88년 포철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90년에야 대우가 선수 한 명과 현금 2,000만 원을 포철에 주고, 김종부를 정식 소속 선수로 데려왔다. 김종부는 드디어 원하던 팀에서 뛰게 됐으나 예전의 스트라이커 김종부가 아니었다.
큰 활약을 하지 못하던 김종부는 93년, 세계 청소년대회 4강 때 감독이었던 스승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일화로 옮겨 권토중래를 노렸다. 하지만, 일화에서도 빛을 보지 못했고, 다시 대우로 복귀한 95년에 은퇴했다.
'비운의 스트라이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김종부는 97년 거제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동의대-중동고-양주 시민축구단-K3인 화성 FC 감독을 거쳐 2016년 경남 FC 감독으로 취임, 프로축구 K리그 감독으로 데뷔했다. 2019년까지 경남에서 감독 생활을 한 김종부는 2021년 중국 허베이 FC 감독으로 옮겼다.<계속>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