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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영국 자동차산업 왜 몰락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영국 자동차산업 왜 몰락했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11.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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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 이래 기계 제조와 공학 기술 앞서고 ' 숙련 노동자 ' 많아 자동차 산업 최적지 꼽혀
국민의 소득 수준도 높아 잠재적 수요가 크고 세계 도처에 식민지 많아 해외 시장 확보 용이
기업가 안목 좁아 구불구불한 도로에 맞는 소형차보다 부자 겨냥한 ' 대형 자동차 '에 매달려
은행도 자동차 투자 등 돌려…정부 1975년~1984년 대규모 보조금 쏟아부었지만 별 무성과
 영국 자동차산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기업가 정신 부족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지구촌을 주름잡던 영국. 흔히 그 대영제국의 몰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싹은 일찍이 20세기 초부터 보였다.

이 주제만으로도 책 한 권은 너끈히 나올 정도지만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지 역사적 배경을 살핀 『국가의 부와 빈곤』(데이비드 S. 랜즈 지음, 한국경제신문)을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전후방 경제효과가 높아, 건설과 더불어 불균형발전론의 축으로 꼽히는 자동차산업이 영국에서 어떻게 몰락했는지 다룬 대목이다.

지은이는 영국 자동차산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가 정신의 부족을 든다. 그럴 만한 것이 초기 자동차의 대표 모델인, 유명한 포드사의 '모델 T'가 선보인 1908년 무렵 영국보다 자동차산업에 맞춤인 나라는 없었다. 산업혁명 이래 기계 제조와 공학기술에서 여느 나라를 압도했으며, 숙련된 금속 노동자를 많이 보유했고, 국민의 소득수준도 높아 잠재적 수요가 큰 것은 물론 제국의 자치령과 식민지 덕분에 해외시장 확보도 용이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무엇보다 영국 기업인들은 변화에 미온적이었다. 예를 들면 "이미 훌륭한 가스등이 공급된 상태인데 왜 전기선 설치를 서둘러야 하는가"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부품 표준화와 조립라인 기술을 축으로 한 포드사의 대량생산 방식을 두고 '떼거리(herd) 방식'이라며 외면했다.

안목도 좁았다.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영국에선 소형 자동차가 적합했으나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운전기사를 고용할 여력이 있는 부유한 구매자들을 위한 값비싼 대형 자동차 생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짧은 제품 수명과 고비용 기술이 특징인 영국 자동차는 1913년 당시 198개의 모델을 자랑했지만, 오직 한 종만이 미국과 영국의 10대 차종 가운데 낄 수 있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어떤 회사도…큰 공장을 지어 충분한 수량을 만들어 생산품을 염가로 만들 정도로 진취적이지 못했다"고 개탄한 것이 이미 1912년 일이었다.

기업가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 기업들은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들에게만 차등 보상하는 시스템을 택했는데 이는 작업 리듬을 노동자들에게 넘겨준 셈이어서 결과적으로 작업 속도가 가장 느린 사람에게 보조를 맞추는 사태를 낳았다. 관습과 개인적 특성을 위해 생산성을 희생하는 것이 도덕적일지는 몰라도 효율적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임금과 보너스, 작업의 속도와 변화를 빌미로 논쟁과 파업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휘청거리는 영국 자동차산업에 불을 지른 것은 또한 은행들이었다. 은행들이 실패로 돌아갈 자동차 회사의 시도에 투자를 멈춘 것이었다. 새로운 자금 없이 어떻게 새 모델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모델 없이 어떻게 자동차를 팔겠는가.

이런 풍토에서 영국 정부가 뒤늦게 1975~1984년에 24억 파운드의 보조금을 쏟아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보수당의 자유방임주의 정책에 따라 돈만 대고 적절한 후속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해서 영국산 자동차는 1989년 자국 시장에서도 겨우 13.6%만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독일은 물론, 미국 프랑스 일본에 뒤져 영국은 자동차 메이저 브랜드를 하나도 갖지 못한 실정임은 모두가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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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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